'수도 이전 유탄' 맞은 교육

2006.06.24 10:30:00

'외고 역풍' 초래한 공영형혁신학교
공공기관 이전 목적으로 졸속 추진
급조된 ‘외국어고 지역 제한’이 화근
‘실패한 미 차터스쿨 벤치마킹’ 비판

바람 잘 날 없는 교육계가 난데없는 ‘외고 태풍’에 휘말려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교육부가 19일 발표한 공영형혁신학교 시범운영 방안 중 ‘외고 모집 단위 축소’가 태풍의 눈으로 즉흥적 정책 추진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교육부 발표 요지=교육부는 올 8월까지 5~10개의 공영형혁신학교 시범학교를 선정해 내년부터 운영한 뒤 2011년부터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공영형혁신학교는 교육과정 운영과 교원인사, 예산 운영에 폭넓은 자율성을 부여하되, 설립권자인 교육감이 민간단체나 대학, 공모교장과 협약을 맺어 운영권을 위탁하는 형식이다. 교장은 초빙공모형으로 임용하되, 15년 이상의 교육경력자가 응모할 수 있고 희망에 의해 근무하는 교원은 순환전보제서 제외된다. 교육부는 공립학교 수준의 수업료로 자립형사립고 와 같은 교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저비용 고품질 교육’이라고 자찬하고 있다.

아울러 6개의 자립형사립고의 시범운영기간을 2010년 2월까지 연장하고, 시범운영학교도 2,3개 추가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현 중학교 2학년이 입학하는 2008학년도부터 전국 단위인 외고 모집을 거주지 시도로 제한하고, 입시위주로 운영하는 외고는 학군단위로 모집을 제한해 사실상 외고 승인을 폐지한다고 덧붙였다.

◇정치에 휘둘리는 교육=공영형혁신학교의 당초 취지는 공공기관 지방이전지인 혁신도시에 우수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혁신도시의 교육서비스가 낮아 공공기관 근무자 가족들이 수도권에 머물러 있을 경우 기관 이전의 취지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평준화의 틀을 유지하면서 별도의 재정 지원 없이 유인가 높은 학교를 창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혁신도시 학생들이 공영형혁신학교를 외면하고 외고나 자립형사립고를 선호할 가능성이 많아 보이자 외고의 지역제한을 추진했을 것이란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교육부는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기관 이전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교육을 수단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갈팡질팡 교육 정책=교육부가 지난해 마련한 공영형혁신학교 시안에는 ‘외고 지역 제한’은 포함되지 않았고, 19일 기자회견서 발표한 방안에도 이는 빠져 있다. 다만 보도자료에 반 페이지 분량의 외고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어 “입시제도 변경은 시행 3년 전에 예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졸속적”이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우형식 지방교육지원국장은 21일 “외고가 어학분야 영재 양성이라는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게 동일계 대학 진학 비율이 31%에 불과해, 바로 잡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반면 시도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는 과학고는 이공계 대학 진학이 75%로 설립 취지에 부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2일 국회 교육위에서도 외고 지역 제한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한나라당이주호 의원은 교육부가 ▲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한 지방교육자치 후퇴 ▲사학의 자율성 침해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제한이라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섣부른 벤치 마킹=공영형혁신학교는 미국의 차터스쿨과 영국의 아카데미학교, 한국의 자립형사립고를 융합한 모형이다.

1992년 도입된 미국의 차터스쿨은 “공립학교에 투자해야 할 자원을 차터스쿨에 낭비하고 , 학업성취도 향상도 크게 이뤄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2년도에 도입된 영국의 아카데미학교는 도시빈민가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재정을 지원하되 민간에 운영을 맡기는 형태로, 이 또한 2004년 현재 17개 교에 불과할 정도로 아직 실험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공영형 혁신학교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외국사례를 추종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교육부는 170만원 상금을 내걸고 이달 30일까지 공영형 혁신학교를 대체할 명칭공모에 들어갔다.

◇공영형혁신학교 전망=공영형혁신학교의 전망은 밝지 않다. 자율학교, 자립형사립고, 1군 1우수학교 등 여러 형태의 학교에 파묻혀 있다가 정권이 바뀌면 흐지부지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교육부 안에서 나오는 실정이다. 19일 발표 이후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공영형혁신학교보다는 ‘외고 지역 제한’에 쏠리는 것도 이에 대한 기대치를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백복순 교총 정책본부장은 “공영형 혁신학교는 교육부의 한건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장관이 바뀔 때마다 계속 새로운 정책을 양산할 것이 아니라, 자립형사립고 등 기존의 제도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종찬 chan@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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