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평소에 얼마나 욕을 하나요? 친구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하진 않나요?”
16일 오후 2시 10분, 서울 청담중학교 말글누리 도서관. ‘교실 내 언어폭력’을 주제로 공개수업에 나선 황현주(과학) 교사와 1학년 2반 학생들이 짤막한 동영상을 보고 있다. 장난삼아 친구에게 욕설이 담긴 휴대폰 문자를 보낸 청담이가 추적서비스에 발각돼 곤욕을 치르는 내용이다. 교실에서 늘 티격태격 벌어지는 일이라 연기도 리얼하다.
“친구들이 많이 쓰는 욕 또 어떤 게 있을까요?” 황 교사의 질문에 한동안 멋쩍어하던 규화가 “야이, ××새끼야, 내일 밟힐 준비 하고 와라”며 시범을 보였다.
황 교사는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그리고 어떻게 반응하나요?”라며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기분 나빠요” “같이 욕해요” “한 대 때려요”라며 너 나 없이 대답한다. 게 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아요”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그 말을 받아 황 교사는 “여러분 말처럼 욕설을 들으면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고 화가 나 나도 모르게 욕을 하게 되요. 그러면 상대방도 또 그렇게 되는 거죠. 하지만 단련이 돼버리기도 하죠. 늘 그러니까 인권침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언어폭력, 인권침해 상황은 비단 교실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요. 오늘은 인터넷, 소설, 만화 등에 나타난 사례를 조사하고 그걸 바람직한 표현으로 고쳐 볼 거예요”라며 활동지를 나눠줬다.
6개 조로 나뉜 아이들은 일제히 모둠활동에 들어갔다. 인터넷 악플 조사에 나선 6조는 최근 논란을 일으켰던 ‘군삼녀’(군대 3년을 주장해 논란이 됐던 여성 네티즌) 댓글을 클릭 몇 번 만에 프린트해 냈다. 2조는 야인시대, 동의보감 등 소설 속 비어, 속어 등을 조사했다. 금세 찾아 낸 욕설로 한 바닥을 채운 지우는 “생각보다 너무 많다”며 찌푸린 표정이다. 욕이 생활화된 자신들의 모습을 르포 형식 보도문으로 꾸며 역할극 준비를 하던 3조는 누가 앵커를 맡고 기자를 맡을 지 옥신각신이다.
이밖에 1조는 인디밴드 크라잉넛의 노래 ‘존나게 재수없어’를 개사하고 4조는 ‘부적절한’ 만화를 고쳐 그렸으며 6조는 언어폭력 추방을 주제로 신문 사설을 작성했다.
발표시간. 아이들은 ‘19금’ 표현에 혀를 내두른다.
‘그 년 참 싸가지 없네. 냄새나는 조갑지 차고 뭔 자랑이라고 주둥이를 놀려.’ 군삼녀 악플을 소개한 창민 군은 “이걸 ‘그 여자 참 이기적이네. 남자 입장도 이해해 줘야지’로 바꿨다”며 ‘번역’ 실력을 뽐냈다. 소설 속 비속어를 발표한 희선이는 “‘싸가지 없는’은 ‘버릇없는’으로, ‘주둥이 닥쳐’는 ‘입 다물어’로 표현해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너무 바람직하게 바꾸려다 보니 ‘이 야만인아’를 ‘이 사람을 먹는 자야’로 ‘무리하게’ 고친 것들도 나와 순간 웃음을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오늘 수업에서 느낀 점,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포스트잇에 적어 칠판 앞에 놓인 ‘친구사랑판’에 붙였다. ‘인권과 언어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욕 하는 걸 멋있게 생각하는 친구야, 그건 착각이야. 기분만 나쁘게 하는 그 말들 좋은 말로 바꿔 쓰자’는 글귀들. 고운 말이 친구와 자기 스스로의 인권을 지켜 줄 거라는 생각이 각자의 ‘마음 판’에도 붙었다면 오늘 수업은 성공이었다.
학생인권 공개수업을 추진한 교총은 오늘 수업을 동영상에 담아 홈페이지(www.kfta.or.kr)에서 제공한다. 교총은 청소년의 달인 5월, 각급학교에서 인권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인권교육 지도자료, 초중․고교별 수업안과 활동지 등도 탑재해 언제든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