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직원공제회 김평수 전 이사장이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되면서 공제회 운영의 민주성․투명성․전문성을 요구하는 교단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낙하산 인사를 차단하고 대의원회의 감사권을 강화하는 공제회법 개정안은 상정조차 되지 않아 국회를 보는 공제회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비리백태=검찰은 17일 김평수 전 공제회 이사장을 구속하면서 “공기업 기관장이 저지를 수 있는 비리의 백화점을 보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김씨는 2005년 실버타운 개발업자에게 돈을 요구해 현금 7000만원과 200만원짜리 양복티켓 10장을 챙겼다. 공제회의 지방 건물에 세든 예식장 업자 4명에게선 3700만원을 받았다.
부하 직원들에게는 “주말 골프 비용 등에 필요하니 현금을 만들어 오라”고 해 34개월간 7100만원을 상납받았다. 직원들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대출하거나 신용카드로 '카드깡'을 해서 김씨에게 돈을 준 뒤 업자들에게 뒷돈을 받아 메웠다. 교원공제회 팀장급 이상 48명은 작년 3월 성과급을 받은 후 “내가 잘해 성과급 받은 것 아니냐”는 김씨 얘기를 듣고는 100만~200만원씩 모아 6100만원을 줬다.
김 전 이사장은 직원들의 만류에도 창녕 실버타운에 667억원을 투자했지만 분양이 안 돼 손실을 내고, 청탁을 받고 이노츠 주식 93억원어치를 샀다가 14억원에 팔아 79억원을 날린 혐의 등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공제회원들은 “14조원 자산의 대규모 조직이 어떻게 일부 임원들에 의해 주먹구구로 운영될 수 있느냐”며 분개하고 있다. 서울 대방중 이창희 교사는 “오래된 낙하산 인사와 비민주적 경영조직이 문제를 키웠다”며 “회원들의 운영 참여를 넓히고 철저한 감사기능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교육청 백장현 교육행정주사보는 “근본 원인은 공제회 이사장과 이사 등을 교과부 장관이 승인해 주는 등 종속관계에 있는 점”이라며 “장관은 정무직으로서 정치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임명한 이사장과 이사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기란 애초부터 힘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공제회가 밝힌 자정방안은 회원들의 기대치에 한참 부족하다. 공제회는 심의기구로 이사회를 신설하고, 임원 선출과정에 투명성을 제고하기로 했지만 교과부가 틀어쥔 이사장, 이사, 감사 인사권과 예결권을 건드리지 않고 어떻게 전문성,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답을 내놓고 있지 않다. 모두 정관 수준이 아닌 공제회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낮잠자는 공제회법=자연 교직원공제회 회원들의 시선은 국회로 향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임해규(교과위)․임동규(지경위) 의원이 각각 공제회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임해규 의원은 17대 국회 때(2006년 11월)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지난 10월 그대로 다시 냈다. △교과부 장관이 갖고 있던 이사장, 감사 등 임원 선출권과 예산․결산 승인권을 대의원회에 넘기고 △교과부 장관이 이사장을 제외한 운영위원 6인 중 3명을 지명하던 권한을 없애며 △대의원 3분의 1 이상의 청구가 있으면 외부감사를 받도록 하는 게 골자다.
단 교과부 장관의 보조금지원권을 삭제하는 부분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임동규 의원 법안은 감사제도를 더 강화하는 의미가 크다. 주요내용은 △감사가 공제회의 부정, 불비한 사항을 발견하면 대의원회에 이를 보고하고, 임시대의원회 소집과 감사원에 회계검사 또는 직무감찰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법안이 병합심사를 거쳐 통과된다면 공제회의 독립경영이 실현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2년 전에 발의된 바 있는 공제회법이 아직까지 상정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낮잠만 자고 있다는 점이다.
의원들은 2007년, 2008년 국정감사에서 공제회의 낙하산 인사, 밀실경영을 질타하며 이사장의 대의원회 선출 등을 주문하면서도 법안 상정에는 늘 인색했다. 이를 두고 일선에서는 “공제회의 막강한 로비에 의원들이 시늉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한 여당 관계자는 “공제회 자리가 자기 몫이 될 수도 있는데 출가를 시키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변종만 충북 문의초 교사는 “대의원회에서 이사장과 감사를 선출하는 등 공제회의 독립성, 민주성이 강화되기를 회원들이 절실히 바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총, 감사청구 검토=한국교총은 23일 회장단 회의를 열어 공제회 사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향후 대응방향을 논의했다. 이원희 회장은 “이사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공제회가 회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환골탈태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며 “무엇보다 대의원회가 이사장을 선출하고 운영에도 적극 참여할 수 있게 법을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교총은 공제회법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여야 의원들을 상대로 한 활동을 강화하고, 공제회 운영개선을 위한 설문조사,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등을 단계적으로 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회장단은 “이사장 주변에 초점이 맞춰진 부실, 청탁투자 수사를 넘어 공제회 운영 전반에 대한 감사를 통해 전횡과 밀실운영을 가능케 한 경영구조를 근본부터 쇄신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