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법제화 된 수석교사제가 행안부의 증원 불허로 발목이 잡힐 위기다.
수업의 달인을 수석교사로 선발·우대함으로써 교원들을 전문성 제고에 나서게 하고, 수석교사가 동료교사 수업컨설팅과 교내외 연수, 교수학습자료 개발 등 수업 지원활동을 폄으로써 학교의 교육력을 높이도록 하는 게 제도의 취지다. 이런 수석교사 직무를 위해 수업을 50% 경감 받게 돼 있어 수석교사 2명 당 1명꼴로 교사 증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행안부는 “교원만 증원할 수 없다”며 시범운영처럼 시간강사 활용을 주문하고 있다. 지난 1일 교총, 교과부, 수석교사회가 행안부를 방문해 “수업개선을 위한 수석교사제가 시간강사만 양산한다면 제도 정착이 어렵다”고 촉구했지만 모르쇠다.
이는 시범운영 4년 동안 시간강사에만 의존하다 수석교사가 제 역할을 못하고, 기피 대상으로 전락한 상황을 ‘나몰라라’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높다.
■수석교사 괴롭히는 사례들
#1=광역시 모 고교 A수석교사는 올 2월 어렵게 구한 시간강사가 지난달 그만둬 낭패다. 면접 때 “중간에 그만두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 했지만 하루 한 시간 수업에 투덜대며 오가더니 “다른 일 구했다”며 떠났다. 당장 시간강사를 구하지 못한 A수석은 “신임교사 멘토링, 수업컨설팅, 교육청 단위 수업개선 지원 등 고유 업무가 산더미인데 2학기에는 18시간 수업을 고스란히 떠맡아야 한다”며 한숨을 지었다. 또 다른 초등 B수석교사는 “벌써 3번째 강사가 바뀌었다”며 “학생, 학부모의 민원에까지 시달린다”고 개탄했다.
#2=4년째 수석교사로 활동 중인 모 고교 C수석은 시간강사를 써 본적이 없다. 대입을 앞둔 인문계고 특성 때문에 학교에서는 아예 불허방침을 통보했다. 그러다 보니 수석 역할이 제대로 될 리 없는데 주변에서는 “활동 안 하느냐”는 말만 돌아온다. 다른 지역의 초등교 D수석도 “학부모가 항의한다”는 이유로 학교가 반대해 예산이 확보된 시간강사 구인마저 포기했다. 그는 “주변 수석들도 학교 반대로 수업경감을 못 받았다”며 “시간강사는 학교가 반대하면 있으나 마나한 제도”라고 토로했다.
#3=초등 E수석교사는 관리자와 동료교사 눈치를 보느라 괴롭다. 시간강사에게는 분장업무나 담임업무를 줄 수 없다보니 수석이 되기 전 맡았던 방과 후 수업, 학부모 관련 업무를 교사들에게 떠안긴 꼴이 돼서다. “그렇다고 다른 업무까지 맡을 자신은 없었다”는 E수석은 “애물단지 취급을 받다보니 역할 수행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반면 이런 부담 때문에 현재 전국 765명의 초중등 수석 중 절반은 교무부 계원업무 등 일반사무를 맡고 있다. “담임에 연구부 업무까지 맡았다”는 초등 F수석교사는 “부장하다 수석이 됐는데 이럴 거면 왜 했는지, 수석 노릇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4=초등 G수석교사는 어렵게 구한 시간강사가 되레 짐이 되는 케이스다. 적은 시수·강사료 탓에 경력자는 다 기피하고 올 2월 졸업자를 사정사정 데려 온 결과다. 3개월 간 수업을 맡긴 결과 학급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교단 경험이 없고, 사명감이나 소속감도 없다보니 아이들이 떠들어도, 딴 짓을 해도 제어가 안 한 것. “학년연구실까지 들려오는 소란함에 못 이겨 중간에 직접 교실에 들어가는 일이 허다했다”는 G수석은 “이웃 반 신경쓰느라 제대로 일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애는 시간강사가 안 맡았으면 좋겠다는 민원 때문에 그냥 수업을 다 맡는 수석이 많다”고 말했다.
#5=시골의 한 초등교에서 5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H수석교사는 미술 2시간, 음악 2시간을 강사로 쓰려고 했지만 결국 못 구했다. 그 시간만, 그것도 시간당 1만 7000원 받자고 올 강사가 없어서다. H수석은 “도시지역은 몰라도 읍면지역은 몇 시간 할 강사는 구하기가 어렵다”며 “교과전담, 동아리활동을 빼고도 주당 27시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교사 역할을 하기에도 버거운 시수다보니 수석교사 활동을 위해 늘 야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