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죽었다….
아들이 살해당했다. 고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들 ‘히로시’는 목이 잘려 나가고 47군데 칼자국이 선명한 채 진달래 흐드러진 강둑에서 발견됐다. 동급생인 범인은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고 싶어서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1969년 4월 일본 도쿄 근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오쿠노슈지/웅진닷컴)는 그렇게 30여년이 지난 후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피해자 가족을 찾아 그들의 삶과 고통을 논픽션으로 재구성한다. 엄마는 정신을 놓기까지 했고, 어린 딸은 오빠의 부재에 울지도 못한다. 아버지는 그런 가족 때문에 정신을 추스르려 애를 쓰지만 아들의 피가 묻은 손목시계를 죽는 날까지 차고 있었다. 대화가 끊긴 가정은 어두운 침묵만 흘렀고 서로가 사소한 것에 상처를 받게 됐다. 가족들에게 아들의 죽음은 삶에 대한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 복수도 생각할 수 없는 비통한 슬픔….
그런데 가해자는 어떨까. 소년원을 나와 변호사가 되었으나 사과 한번 없었고, 전화를 하니 돈이 필요하면 빌려 주겠다는 말만 한다. 갱생을 하라고 소년원에 보냈건만 어디에서도 갱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살인현장에 만개했던 그 꽃, 진달래 화분을 사무실 베란다에 늘어놓고 있는 그와 30년이 지난 지금도 외상후스트레스 증후군을 보이고 있는 여동생.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법은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같은 미성년자에 의한 살인과 그 이후의 상황을 다룬 책 ‘보이A’(조나단 트리겔/이레)는 가해자의 입장이라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보이A’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1993년의 10살짜리 소년 둘이 2살짜리 아이를 돌과 쇠막대로 때려 잔인하게 살인한 후 기찻길에 유기한, ‘리버풀 사건’은 영국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2명의 피의자 모두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기에는 지나치게 어린 나이였다는 점, 범행동기에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는 점 등은 영국민들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언론에서 줄곧 ‘보이A’로 불렸던 열 살 소년이 보호감찰관이 선물한 나이키 ‘이스케이프’를 신고 스물넷 ‘잭’이 되었다. 나이키 운동화는 잭에게 자신을 살인범 ‘보이A’가 아닌 맥주와 스포츠를 좋아하는 보통청년이라는 용기를 줬다. 직장의 매니저는 “수감생활을 좀 했다고 들었네. 괜찮아.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도 사생활에 대한 권리는 있는 거야. 말하고 싶은 건 세컨드 찬스지”라며 어깨를 두드려준다. 물론, 잭이 ‘보이A’인지는 몰랐을 때 얘기다. 아무도 그걸 몰랐을 때 그때만큼은….
아이러니하게도 ‘선행’으로 언론에 얼굴이 알려지게 된 그를 언론은 주민들의 ‘알권리'를 근거로 신상을 털고, 주위사람들은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외면한다. 결국 잭은 ’이전의 나는 이미 죽고, 지금의 나는 사람들에 의해 또 죽었으니 돌아갈 곳이 없다’며 떠난다.(이스케이프)
‘보이A’로 명명된 잭은 끝내 단죄돼야 할 인간인가. 지울 수 없는 죄를 짓는 한 인간은 결코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인간이 인간에게 내리는 형벌의 한계는 어디인가. 인간은 왜 별 이유도 없이 ‘보이A’와 같은 끔찍한 오류를 저지르는 것일까. 죄를 저지른 인간의 속죄는 어디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용서와 구원의 행위는 또 언제, 어디서부터, 누구에 의해 시작될 수 있는 것일까.
수십 년을 고통 속에 산 ‘히로시’ 가족과 같은 무수한 유사 히로시 가족들이 지금 우리 곁에 있다. “가해자의 인권을 배려하는 것에 비해 피해자(유족)에게는 더 무관심한 게 제대로 된 사회냐”고 묻는 오쿠노의 묵직한 질문에도, ‘…일어서라, 올라서라, 입을 다물어라,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는 순간 침대보로 만든 줄에 목을 매달고 죽어 있거나 손목을 긋고 피 흘리며 쓰러져 있게 될 것이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굴복하지 마라.…’(보이A - p.62) 고 되뇌이는 잭에게 두 번째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낙인찍어 집단 린치를 가하는 것도, 그 어느 쪽으로도 선뜻 무게중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보이A’와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는 지금, 우리들 바로 앞에 와있는,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고민하라고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