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성범죄 ‘기계적 신고’ 기관 아니다

2014.02.28 16:15:53

대전지법 “조사‧판단 후 개연성 있을 때만 신고 의무”
‘즉시신고’ 위반 과태료 처분 받은 A중에 불처벌 판결
교총, 탄원 등 적극 지원…교육부 “후속대책 곧 마련”
학폭법도 조사권 인정, 혼란 막을 명확한 지침 필요

학교는 학생 성범죄 주장, 신고, 풍문을 듣고 알게 됐을 때, 수사기관에 즉시 신고해야 할까. 아니면 학교가 기본적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신고 여부를 결정해야 할까. 이와 관련 학교의 합리적 판단에 따라 개연성이 있을 때만 신고의무가 발생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현행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에 따르면 ‘학교의 장과 그 종사자는 직무상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 발생 사실을 알게 된 때는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반면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4조 제7항에는 ‘성폭력 등 특수사건에 대해 학전문기관에 실태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며 학교의 조사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선 학교는 신고 의무가 발생하는 ‘성범죄 발생 사실을 알게 된 때’가 과연 어느 ‘시점’을 말하는지 혼란스러워 선의의 피해를 입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로 대전 A중은 지난 2012년 12월, 여 자녀가 같은 반 남학생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학부모의 신고를 받고 즉각 사실조사를 한 결과, 추행사실이 발견되지 않아 학부모에게 설명하고 마무리 지었다가 1년여 이상 곤욕을 치렀다.

학부모는 학교가 사건을 은폐한다며 신고 다음날 곧바로 대전지방경찰청에 신고했고 법정 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에 대전지방경찰청은 1, 2차 조사에서 모두 학교에 ‘혐의 없음’ 으로 종결지었고, 지방가정법원에서도 ‘불처분’ 결정을 내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대전시교육청은 지난해 12월 ‘학교가 즉시 신고의무를 위반했다’며 교장, 담임교사에게 각각 과태료 150만원을 부과했고, 학교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사건은 다시 대전지방법원에 송치됐다.

이와 관련 A중은 “학교폭력 매뉴얼에 따라 적법하게 학생 전체 대상 면담, 설문조사를 통해 사실을 확인했고 그 결과 학부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에게 미칠 상처를 교육자로서 간과할 수 없어 곧이곧대로 신고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또 “해당 사건에 대해 법적으로도 무혐의 판결이 내려진 상황에서 신고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과태료 부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전교총과 한국교총도 즉각 학교방문‧면담, 진상조사, 대응활동, 법률 자문에 나섰고 2월 7일에는 대전지방법원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학교의 특수성과 부당함을 적극 제기했다.

그 결과 대전지방법원은 20일 ‘과태료에 처하지 아니한다’며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아청법의 법문 해석에 대해 “신고의무자들이 성범죄 풍문을 듣거나 신고 또는 제보 내용을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때, 성범죄가 발생했을 개연성이 있는 경우에만 (신고 의무가) 발생하는 것으로 조화롭게 해석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판결문에 따르면 “성추행 이야기를 들은 당일과 그 다음날 교사와 당해 학급 학생들을 상대로 진상조사를 한 후, 피해자 주장 피해 시간대에 학생들의 교실 밖 출입이 전혀 없었다는 점, 피해자가 같은 반 5명의 학생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면서도 1명 이외에는 가해자를 지목하지 못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사건이 실제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적시했다. 이어 “법원에서도 증거 불충분으로 불처분 결정을 한 사실이 인정되는 점, 교육부와 법무부 등이 공동 발행한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에서 종사자 등이 피‧가해 사실 확인 및 증거 확보를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그 절차대로 사건을 처리하려고 했던 점 등을 종합하면 법이 정한 신고의무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과태료에 처하지 아니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불처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학교라는 특수한 여건을 고려할 때, 최소한 적법 절차에 따른 성실하고 신속한 사실조사를 인정하고, 실체나 개연성이 없는 사건에까지 신고 의무를 지우고 처벌할 수 없다는 결정이어서 의미가 크다.

A중 교장은 “기계적 신고가 아닌 학교의 교육적 판단을 인정해 준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무엇보다 이번 사건을 중대한 교권침해로 간주하고 탄원서까지 제출해 준 대전교총과 한국교총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A중 판결에 따라 더 이상 학교, 교원, 학생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교육당국의 명확한 지침 마련과 안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말 그대로 ‘즉시’ 신고했다가 무혐의 결정을 받은 학생(가해자로 지목된) 부모로부터 최근 협박성 항의를 받고 있는 인천 B고는 일선학교에게 남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교육부 학교폭력대책과 김영진 과장은 “대전교육청은 물론 관계 부처와 이번 판결내용을 협의하고 논의해 일선 학교의 피해가 없도록 후속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교총 하석진 교권강화국장은 “이번에 불처벌 판결이 내려졌지만 적절한 사후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학교 측의 신속하고 성실한 조사와 합리적 판단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철 chosc@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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