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필자가 재직하던 어떤 학교에서 겪은 일이다.
학년부장을 맡으셨던 김 선생님은 매사에 열정이 넘치셨다. 원로교사로서 연세가 꽤 높으셨음에도 아침 일찍 등교해 복도를 돌면서 전 학년의 자습감독을 하셨으며, 자신이 맡은 수업 또한 토론 등 새롭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가며 매우 알차게 진행하셨다. 하교 후에도 교재 연구와 동아리 지도를 하시느라 퇴근은 항상 맨 나중이셨고…. 나무랄 데 없는 모범교사이셨던 것이다.
선생님의 열정은 생활지도에서 더욱 빛났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는 교실을 돌면서 복장 위반자나 지나친 화장을 한 학생들, 또 무단으로 지각·결석을 한 학생들을 일일이 불러내 때로는 타이르고, 때로는 무섭게 꾸짖으셨다. 이 호랑이 선생님 덕택에 같은 학년을 맡은 동료교사들은 생활지도로 인해 반 아이들과 낯붉힐 일이 없었다.
그렇게 한해가 저물어갔다. 그해 늦가을 어느 날 오후, 그 선생님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필자를 자신의 자리로 부르셨다. 그리고는 컴퓨터를 열어 무언가를 보여주셨다. 이른바 ‘교원능력개발평가’의 결과였다. 학생들이 그 선생님을 평가한 ‘만족도’ 점수는 2.3이었다. 2.5 이하면 연수대상이다. 놀라 쳐다보니, 그분은 비록 미소는 띠고 계셨지만, 표정은 몹시도 씁쓸하고 허탈해 보였다.
몇 해가 지났지만,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요컨대, 그 선생님의 열정이 문제였다. 제자들을 자식처럼 사랑해 선도하기 위해 그들의 나태와 일탈을 꾸짖고 잔소리했건만, 돌아온 것은 최하점을 몰아준 보복적인 점수였고, ‘반성문(?)’ 제출과 ‘능력향상연수’라는 이름의 강제 연수였던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목격한 교육현장의 현실이다. 가끔은 김 선생님의 경우처럼, 근면·성실하고 열정적인 교사가 그로 인해 학생들의 경원(敬遠) 혹은 증오(憎惡)의 대상이 돼 어이없는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게 지금의 ‘교원능력개발평가’ 제도다.
교육부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지난 9월 개선안을 내놓은 바 있다. 초등학생 만족도 조사는 개선하되, 연수대상자 지명에는 활용하지 않고 자기성찰 자료로만 활용하며, 중·고등학생의 경우는 이를 다소 개선해 양 극단 값 5%씩 총 10%를 제외하고 결과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발표를 듣고 떠오른 성어가 ‘격화소양(隔靴搔癢)’이다. ‘신발을 신고서 발바닥을 긁는다’는 뜻으로, 일을 하느라고 애는 썼지만 정곡을 찌르지 못해 답답하고 성에 차지 않을 경우에 쓰는 말이다. ‘속전등록(續傳燈錄)’ 에 나온다.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