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나 평등을 가르쳐야 마땅한 교육기관이 인권위원회나 평등주의자들이 요구하는 것들 때문에 그런 것들을 가르치는데 오히려 곤경에 처해질 때가 있다. 인권이나 평등의 실질적인 확보차원이 아닌 형식적이고 보이기 위한 결정들이 정작 교육을 가로막는 것이다.
금년 학기초 새로운 아이들의 출석부를 작성하는데 정말 황당한 지시가 있었다. 남녀불문하고 가나다 순으로 출석부를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그 방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녀로 나누어 생년월일 순으로 정하여 남학생은 1번부터 여학생은 41번부터 정하는 것이 지난해까지의 관례였다. 어떤 여학생이 왜 남학생은 1번부터고 여학생은 41번부터냐고 항의를 하는 바람에 작년에는 남여로 나누어 가나다 순으로 하더니 금년에는 아예 뒤섞어 가나다 순으로 정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남녀 평등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는 모르지만 학교에서는 남여로 나누는 것이 좋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거주지 통반 남녀통계, 평가의 남녀 평균치, 사물함이나 신발장 배치 등등.. 이런 것들이 지금처럼 뒤섞어 놓았다고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합리적인 것은 틀림없다. 꼭 남학생이 1번이어야 할 이유도 없고 출석번호가 그 사람의 우열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니 여학생이 1번이어도 아무 관계가 없다. 남녀로 나누어 제비로 정하든지 아니면 격년으로 바꾸든지 그건 평등과 아무 관계도 없는 효율을 위한 한 방법일 뿐이며 진정한 평등은 서로가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학교가 무색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누어야 꼭 평등이라면 가나다순에 대해 만약 황씨가 왜 가씨가 1번이어야 하는가? 이건 성씨에 대한 불평등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걱정스럽다.
어제는 또 초등학교 교사의 일기검사가 아동의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으니 개선하라는 인권위원회의 의견표명이 있었다. 초등교사의 일기검사라는 것 자체가 방법상 너무나 다양하다. 이 것은 하나로 묶어 인권위원회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성질이 아닌 교육활동의 하나일 뿐이다. 아동의 일기를 보는 방법은 다양하더라도 교사들이 그 일을 하면서 바라는 것은 일기쓰는 습관이 정착되고 일기쓰기를 통해 사고와 글쓰기능력의 신장, 거기에다 선생님이 보기에 더 착하고 올바른 생활을 하려고 애쓴다면 좋겠다는 것들이 아닌가?
물론 보이기 싫어 거짓 일기를 쓰는 아이도 있다. 교사도 보면 안다. 그러기에 고학년 아이들에게는 검사를 면제해주기도 하고 아이들의 속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따로 약속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것을 통해 교사들이 바라는 쪽으로 결실을 얻기도 하고 변화되기도 한다. 완전하게 굳어진 것도 아닌 아이들의 마음이나 생활을 밝고 아름답게 자라게 하려는 시도가 양심의 자유나 사생활의 침해라는 것은 너무 거창한 발상 같다. 이런 것들이 쥐를 잡으려다 독을 깨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해 교육의 장을 위축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신중한 결정들을 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