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교육적일 수야 없는 일이지만

2005.06.08 17:58:00

지구상에는 매일 하루에 10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니체의 자살, 헤밍웨이의 엽총 자살, 일본 무사들의 할복자살, 청소년들의 비관 자살, 그리고 연예인이나 기업인 등의 의문의 자살까지 그 사연들은 많고 다양하고 또 기구하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그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인간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고 시행하였다는 것이다.

지난 해 자신이 학생자치회 후보로 추천한 학생이 부모의 이혼에 따른 충격으로 가출했다는 이유로 인해 일방적으로 후보에서 사퇴시키자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학교와 갈등을 겪고 자책감과 교육현실에 대한 극심한 좌절감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한 교사의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여교사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킨 것이 발단이 되어 결국 교장이 자살했던 일이 있는가 하면 며칠 전에는 충북의 모학교 현직 교감이 학교 업무 처리 과정에서 생긴 내부 갈등으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다가 정년을 한 해 남겨둔 채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모 신문에 투신자살한 김모 교감의 운구행렬이 정든 교정을 지날 때 후배 교사들이 흐느껴 울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이 사건을 두고 지금 충북 교육계는 어수선하기만 하다.

아랍에는 자살자들의 묘비에 즐겨 쓰이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서 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이 낫고, 앉아 있는 것보다 눕는 것이 낫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는 서 있는 것이 앉아 있는 것보다 낫고,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 개인에게도 자살할 권리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개인이 죽기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그에게는 자살을 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즉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없으며 자살을 택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죄 값이 덮어지거나 명예가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교사의 자살, 그것은 더더욱 그렇다. 교사이기 이전에 인간이므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교사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의지력을 가르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들 앞에서 자살의 길을 택하는 것은 이유야 어찌되었든 당연히 비교육적이고 자기모순이며 어떤 논리로도 객관화할 수 없다고 본다.

자살은 궁극적으로 절망감과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다는 궁극적 무기력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는데 극단적으로 개인화 되고 비인간화 되어 무기력 상태로 치닫는 사회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무수한 억측을 조용히 묻어둔 채 결국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김 교감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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