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교사에게 ‘교편(敎鞭)’을 돌려주자

2005.06.15 22:57:00

학교 교실, 수업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벨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하던 일에 열중한다. 책상에 걸터앉아 장난을 치거나 TV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춤동작을 흉내 내며 떠들어댄다. 아예 선생님이 들어오든지 말든지 그냥 잠을 자거나 연예 잡지나 만화를 보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교사가 들어와서 근엄하게 호통 치며 때로는 조용히 공부하자고 호소한다. 진짜 화난 목소리로 외쳐야 학생들은 약간 들은 체 한다. 교사가 학생들을 지도할 만한 권위가 점차 사라지고 인정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의 교육 현장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된 얘기다. 아니, 학교의 교실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모두들 한탄한다. 교권이 실추됨으로 인해 교단은 사기와 의욕이 땅에 떨어져 있고, 배움의 도정에 있는 학생들은 본업인 학교 수업을 게을리 하고 학원 수강이나 과외로 입시 준비에만 골몰해 있다. 입시와 관련 없는 학교 정책이나 학사 일정에는 관심도 없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고 도처에서 과거 무자격자에 의한 졸속 교육개혁의 시행착오와 그에 따른 후유증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성급히 사회 다른 분야의 개혁과 동일시한 데서 온 오류가 컸고, 시장 경제 논리의 성급한 교육 현장에의 도입이 큰 무리였다. 우리 교육의 총체적 위기감이 절실히 느껴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사회적 분위기이다. 이미 예견된 결과 아닌가. 교육은 ‘國家 百年之大計’라고 했으며. 국가 발전 전략 속에서도 중핵을 차지한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은 쾌도난마(快刀亂麻)식으로 조급히 서둘러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서 잘못된 결정의 후유증이 더욱 큰 것이 교육의 어려움이다.

교육의 길은 멀고 험난하며,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이 길을 우리는 지켜나가야 하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백년대계임을 알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선학교에서는 우선 교권을 회복하여 스승의 위상을 다시 세워야 한다.

문제는 진정한 최소한의 ‘사랑의 매’까지도 인정되지 않는 풍토다. 요즘은 가정도 사회도 아이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노리개는 판을 쳐도 따끔하게 버릇을 들이는 사랑의 채찍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아이들의 정신은 막대기처럼 야위어지고 몸뚱이는 비만이 되어 가고 있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고운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우리의 옛말이나 '자녀에게 회초리를 쓰지 않으면 자녀가 아비에게 회초리를 든다'라는 영국 속담도 있다.

사람을 만들기 위해 스승이 기꺼이 매를 들고, 제자의 부모가 회초리를 만들어 스승에게 바쳤던 것은 그리 먼 옛날의 일이 아니었다. 옛날에는 스승을 위로하는 날이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서당에서 학업을 끝내는 유월 유두날이 되면 자식을 맡긴 부모가 싸리나무로 한 아름의 회초리를 만들어 스승에게 바쳤다고 한다. 자식의 종아리를 때려서라도 부디 제대로 된 '인간'을 만들어 달라는 의미였으리라. 자식의 교육을 위해 ‘사랑의 매(敎鞭)’을 맡긴 조상들의 깊은 뜻이 새삼스러워 진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敎鞭'이 아쉬운 때이다. 이제라도 돈 안 드는 사랑의 매를 선생님께 돌려주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은 꾸짖고, 벌을 주는 한이 있어도 가르칠 것은 꼭 가르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고통이나 인내, 제약도 있음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물론 매는 잘 쓰면 명약이 될 수도 있지만 잘못 쓰면 오히려 무기나 극약이 될 수도 있음을 안다.

과거 매를 잘못 사용했던 희귀한 예 때문에 무조건 극약으로 보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교육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일이고 그래서 교직은 고도의 전문직이거늘 이제 우리도 ‘사랑의 매’를 교육적으로 활용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매를 명약으로 쓰기 위해서 학생의 인권보호 문제와 학생과 학부모, 즉 교육 수혜자 중심의 학교교육이라는 명분도 고려할 줄 아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슴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필요하다. ‘오른손으로 벌을 주면 왼손으로 껴안아주고, 세 번 꾸짖으면 일곱 번 칭찬하라’는 옛말을 기억하자.

이제라도 교사들이 교육에 만능무기로 남용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자녀들을 학교에 맡겨놓은 이상 교직의 전문성을 믿고 이제라도 교사에게 ‘사랑의 매’를 돌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소귀에 경 읽기’라고 교육을 포기하지 말고, '사랑의 매'를 들고서라도 ‘소도 경을 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사랑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하자.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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