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양손 검지손가락 두 개만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이른바 독수리 타법을 쓰고 있지만 이미 국가공인기술자격인 워드프로세서 2급, 문서실무사 1급을 당당히 취득하여 나름대로는 정보화 시대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본다. 주위의 선생님들은 인간 승리라며 신기해 하지만 이런 ‘공포의 독수리’ 타법으로 이미 10여 년 전에 대학원 학위 논문도 스스로 썼고, 지금까지 각종 연구보고서 등도 큰 불편 없이 잘 해결하고 있다. 반면 워드 1급 자격에 도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것은 한글이 문제가 아니고 영어 자판 두드리는 데 시간이 너무 지체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문 타자는 한글에 비하면 속도도 빠르게 나지 않고 피로가 쉽게 온다.
우리 한글의 가장 큰 특징은 자음과 모음의 음과 배열이 매우 규칙적이라는 것이다. 자음과 모음이 내는 소리는 각각 단 하나이므로 아주 정확할 뿐 아니라 각각 고유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그 소리에 딱딱 맞춰서 음성을 글로 데이터화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음과 모음이 번갈아 사용되기 때문에 타자를 칠 때도 손의 피로를 훨씬 줄이면서 속도를 더 빠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엄지공주’라고 불리는 요즘 아이들은 엄지손가락 두 개만으로도 번개같이 핸드폰 메시지로 채팅을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우리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이다. 이런 면들에서 한글은 앞으로도 정보화 시대에서 가장 유리한 문자임에 틀림없다.
한글은 외국에서도 극찬하는 글자이다. 소설 <대지>를 쓴 미국의 유명한 여류작가 펄벅은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고 훌륭한 글자라고 하며 세종대왕을 한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또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세계 언어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학술회의가 있었는데, 안타깝게 한국에서는 참가하지 못하였지만, 그 회의에서 한글을 세계 공용어로 만들자는 토론이 있었다는 보도를 읽은 적이 있다.
이미 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에서 우리나라 한글(훈민정음)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한 유네스코는 ‘바벨계획’을 제안하여 ‘언어 다양성과 정보 이용의 공평성’을 높이는 운동을 벌이면서 소수민족 중 말은 있고 언어가 없는 민족에게 한글을 가르치자는 제언도 나오고 있으며, 또 1989년 이후 매년 ‘세종대왕상’(킹 세종 프라이스)을 만들어 해마다 문맹률을 낮춘 사람이나 단체에게 주고 있기도 하다. 사람이 만든 최초의 언어이면서 자연 발생적이 아니라 과학적인 체계와 원리를 가진 언어는 세상에 오직 한글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글의 우수성이나 극찬에 비해 정작 우리는 자부심이나 정체성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미 오래 전에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우선적으로 제외된 것은 아쉬운 면이다. 요즘 주5일근무제가 시행되면서 현재의 공휴일에 대한 축소 방침이 추진되고 있다. 식목일이 우선 내년부터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되고 제헌절은 오는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참에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통합 가칭 ‘가정의 날’로 대체하여 일요일로 옮기거나 민속 명절 연휴를 축소하는 등 여타 공휴일을 조정하더라도 우리 민족 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새로운 자긍심과 사라져 가는 민족의 정체성을 되살리기 위하여 이미 사라진 한글날을 공휴일로 다시 부활하는 운동에 다시 불을 지피자.
현재 법정공휴일인 식목일도 1960년 3월 15일 '사방(砂防)의 날'로 대체되어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식목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공휴일로 환원된 역사가 있으므로, 1990년 8월 24일 국무회의에서 공휴일에서 제외시켰던 한글날을 다시 부활하는 것은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사회적 합의만 이루어지면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