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보다 더 파란 가을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 몇 무리가 온갖 그림 다 그리고, 살랑거리는 가을바람에 가냘픈 허리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진한 향기 맡으면서 운동회를 한다.
해마다 이맘때 동심들은 펄럭이는 만국기 따라 하늘을 날고, 백색으로 그어진 산뜻한 선을 따라서 가슴에 추억을 깊게 새긴다. 아직은 따사로운 햇살을 가리고 싶지만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 터져라 부르는 함성 소리에 응원기 큼직하게 누운 8자 그리면서 땀에 얼룩진 얼굴에 커다란 미소를 만든다.
학교 끝나면 학원으로, 학원 끝나면 컴퓨터 속 가상의 세계에서 용감무쌍한 전사가 된다. 칼을 휘젓고 기관총을 쏘아 대고 소림 권법으로 불의의 악당들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라며 의기양양하게 영웅이 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어울려 맨땅에서 모래밭에서 놀이기구에서 놀아 본지도 무척 오래 됐을 동심들이 오늘은 자연을 벗 삼고 친구들과 한판 어울린다. 마음껏 목청을 돋운다. 종아리에서 쥐가 날 만큼 달려 본다. 흙먼지 뒤집어 쓴 얼굴 속에 까만 눈동자가 반짝인다.
개인달리기 시합할 때 1등 하고 싶은 마음 꿀떡이지만 누군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앞으로 나가는 게 영 시원치 않은 동심도 많다. 마음만 앞서고 다리는 말을 안 들어 ‘앗차차’ 넘어지는 동심이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라는 선생님 말씀 생각나서 다시 일어나서 뛰어보지만 뒤에 출발한 팀들이 바짝 뒤따라온다.
“나는 왜 이렇게 달리기를 못하지?”
해마다 가장 많은 귀여움 독차지 하는 꼭두각시가 동작 틀린 어설픈 꼬마신랑을 군밤 한대 후다닥 주고 나서 꼬마신랑 팔 걸며 사뿐사뿐 춤을 춘다. 앞니 빠진 말괄량이 귀여운 미소는 언제 보아도 예쁘기만 하다.
“우리 커서 결혼하자. 알았지?”
언제부터인지 학급이나 학년 경기를 할 때에는 꼭 자모와 같이 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시골의 학생 수가 줄어들어 학생들만으로는 경기가 너무 쉽게 끝나고 재미없기 때문에 연합으로 하게 되었다. 자모들도 귀여운 자녀와 손 맞잡고 함께 경기를 할 수 있으니 1석2조인 셈이다. 그런데 결손 가정이 많고 보니 부모 없는 동심도 꽤나 많은 편이다. ‘엄마가 없으니 어떻게 해야지?’ 둘레둘레 찾아보니 옆집 아줌마가 보인다. ‘애라 모르겠다.’ “아줌마 저랑 함께 경기해요.”
옛날에는 ‘줄 맞추기’ ‘발 맞추기’ ‘구호소리 맞추기’ ‘간격 맞추기’ ‘동작 맞추기 등 웬 맞추기가 그리도 많았는지 모른다. 온통 맞출 것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일제문화 및 군사문화가 교육현장에 깊게 뿌리 내려 있을 때의 얘기다. 그렇지만 강인한 체력이 길러졌고 극기심이 신장되는 이점도 있었는데…….
개성을 존중하고 개별화된 교육을 부르짖고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민주화된 요즘은 나약하고 자제력이 부족하게 자라게 하고 있다.
“선생님, 저는 달리기 죽어도 못하겠어요.”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어디론가 흘러 가버렸다. 호수 같은 하늘에서 파란 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다. 이렇게 곱게 펼쳐진 가을의 운동회가 동심 속에 하나의 동화가 되어 스며들어 간다. 이 운동회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먼 훗날 다시 고향의 운동장에 서게 될 것이다. ‘내게도 아름다운 운동회는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