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운동장에서 치러진 동문 한마당잔치

2005.09.20 16:02:00

추석 다음날은 다른 일정을 잡지 못한다. 친정에 다녀오고파 하는 아내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가 어린 시절 공부하던 초등학교로 차를 몰고 달려갔다. 그곳에 가면 환갑이 넘은 초등학교 동창(나이차가 3-5세까지 남) 들을 만날 수 있고 초임지였던 모교에서 3년9개월간 가르친 제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만해도 분교장으로 학교모습이 그렇게 쓸쓸해 보이지 않았는데 올 봄에 폐교가 된 모교운동장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저미도록 아파오는 마음을 애써 달래보았다. 폐교의 쓸쓸함을 감추려는 듯 운동장에는 가을 운동회처럼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어 다소 위안은 되었다.

접수석에서 '2회 졸업생 이찬재' 라는 명찰을 달고 발길을 옮기려는데 반가운 후배들과 중년이 된 제자들이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1회 동문들이 한 명밖에 참석하지 않아서 우리가 최고선배대접을 받는다. 동문회장도 우리 동기생이 맡고 있다. 1년 전에 보고 다시 만나도 반갑고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 것이 동기생인 것 같다. 여자 동창도 4명이나 보인다. 서울에서 대구에서 친구들을 보려고 찾아온 성의가 놀랍다.

다행인 것은 도자기 공예를 하는 분이 학교를 임대하여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체육대회를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 그런대로 학교 모습이 유지되어 위안은 되었으나 지역의 문화센터인 학교가 없어졌다는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총동문회 사무실도 한 칸 내주겠다는 배려에 이런 분에게 오래도록 임대하였으면 좋겠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체육대회는 한창 무르익어 배구와 씨름경기장엔 관중의 응원이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전에 없던 대형 천막이 운동장 둘레에 있었고 본부석 무대엔 졸업 당시 흑백사진을 크게 확대하여 걸어놓아 색다른 인상을 주었다. 상품도 푸짐하여 마을별로 자전거 한 대씩을 추첨을 통해 주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체육대회가 모두 끝나고 노래자랑을 하였는데 심사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채점을 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이벤트사에 온 사회자가 재치와 유머를 섞어서 진행을 매끄럽게 잘하여 동문 가족이 한 마음이 되는 축제 분위기가 너무 좋아 보였다.

이런 분위기로 동문체육대회가 몇 년이나 더 유지가 될 것인가 모두들 걱정을 하는 마음이다. 모교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치룰 수 있다는 것만도 다행이지만 앞으로 몇 년을 지나고 나면 졸업생 수가 줄어들어 행사를 주최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한다. 고향에 학교가 있다는 것이 이렇게 든든하고 좋은 것인가? 선후배간에 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지켜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동문 대토론회라도 열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다.
이찬재 (전)충주 달천초등학교 교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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