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경매

2005.09.21 16:13:00

학교 축제를 며칠 앞두고 2학년 재영이가 찾아왔다. 1학년 때부터 유난히 붙임성이 좋아 선생님을 잘 따르는 아이였다.

"선생님, 이번 축제 기간 중 뜻 맞는 친구들과 함께 '경매'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소장하신 물품 중 쓰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기증해 주셨으면 합니다."

평소 서글서글한 눈매와 예절바른 행동으로 믿음을 주던 녀석이었다. 그러나 '경매'란 말이 주는 어감이 왠지 학생들의 축제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란 선입견 탓인지 궁금증이 동(動)했다.

"그런 이벤트를 준비할 때는 무슨 목적이 있었을 텐데, 그 내용을 설명해 줄 수 있겠니."

내심 순수해야 할 학생들의 축제에 상업적 목적이 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네, 이번 기회에 선생님들이 아끼는 소장품을 알아보고, 관심 있는 학생들은 경매를 통해 해당 물품을 구입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경매를 통해 얻은 수익금은 인근에 있는 보육원에 전액 기부할 예정입니다."

축제를 이용해 수익사업을 벌일 것이라는 지레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랬구나. 그처럼 좋은 이벤트를 준비했는데 선생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겠지. 오늘 준비해 놓을 테니 내일 아침에 들리겠니."

"네, 선생님 감사 합니다. 내일 아침에 오겠습니다."

녀석이 다녀간 후, 교무실 한 쪽에 있는 캐비닛을 열어 보았다. 마침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의 아이들에게 생일 선물로 준비해 놨던 펜 묶음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생일 선물은 다시 준비할 수도 있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의 갸륵한 뜻이 알려지자 선생님들도 갖고 있는 물품을 아낌없이 내놓기 시작했다. 카세트, 하회탈, 부채, 모자, 책, 손목시계, 회화테이프, 목걸이 등 다양한 종류만큼이나 사연도 애틋했다.

수학과 한 선생님은 며칠 전 회사에 취직한 제자가 직접 선물했던 고급 만년필을, 영어과 신 선생님은 멕시코에서 구입한 장식품을 내놓았다.

드디어 축제의 날은 밝았고, 많은 학생들의 관심 속에 경매가 시작되었다. 경매사를 자처한 재영이의 우렁찬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은경 선생님께서 애지중지하는 CD케이스입니다. 그럼 1000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이쪽 저쪽에서 호가(呼價)가 이어졌다.

"1500원." "2000원." "3000원."

"네, 3000원까지 나왔습니까. 더 이상 없습니까. 그럼, 3000원에 낙찰됐습니다."

이날 경매에서 최고 가격을 기록한 물품은 단연 한 선생님이 내놓은 만년필이었다. 준비한 물품은 삽시간에 동이 나고 말았다. 이렇게 모아진 수익금이 20만원 남짓 됐으니 경매는 대성공이었다.

다음날 아침, 복도에서 재영이를 만났다. 여전히 바쁜 눈치였다.

"선생님, 경매 수익금을 내일 보육원측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청소년들이 갈수록 이기적으로 변한다고 개탄하는 어른들의 걱정을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아이들은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까지도 돌볼 줄 알았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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