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자전거다.”
우리 반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창밖을 쳐다보던 ‘재만’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친 것이다. 30여 명의 학생들 모두 일어나서 운동장을 쳐다보았다. 재미있다는 듯이 신기하다는 듯이 밖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모습이 내겐 너무도 뜻밖이었다. ‘세상에 그 흔하디 흔한 자전거를 보고 이렇게 벌떼처럼 야단들일까!'
32년 전, 호남평야의 너른 들녘에서만 살다가 첫 발령을 받고 부임한 곳은 전북 동부 산간 지방 ‘장안산’ 계곡의 깊고 깊은 골짜기에 있는 학생수 100여 명과 네 명의 교원이 근무하는 3학급 규모의 작은 단위학교였다. 요즘은 학생이 100여 명이면 꽤나 큰 학교에 속하지만…….
군청 소재지에서 해발 700m 정도의 고개를 넘어 1시간 50분 쯤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학교였다. 그 고개로는 차량이나 오토바이는 물론 자전거조차도 넘어 갈수 없는 가파른 소로였다. 아직 녹지 않은 눈길과 군데군데 빙판길이 험난하기만 한 길을 따라 착임할 때 ‘세상에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까?’ 믿어지지 않았다. 마치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사람들과는 어딘가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완만한 산비탈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층계 논배미가 손바닥만 했고, 가파른 비탈에는 논배미보다는 제법 큰 밭뙈기들이 걸쳐져 있었으며, 장작을 패는 모습, 표고재배 참나무 목재가 키 큰 나무 아래에 질서정연하게 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 농사로는 엽연초를 경작했으며 벼농사는 겨우 몇 세대만이 지을 정도로 경지 면적이 좁았다.
학교의 앞에는 높은 산이 딱 버티고 있었고 뒤쪽도 마찬가지였다. 왼쪽은 골짜기의 상류고 오른쪽으로 약간 큰 냇물이 소를 이루면서 흐르고 있었다. 냇물 흐르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소낙비 떨어지는 소리로 착각할 만큼 귓전을 맴돌았다.
나는 3,4학년 30여 명을 담임하게 되었다. 교사로서의 첫발을 딛는 벅찬 감정과 큰 꿈을 안고 300리 먼 길을 달려왔는데 고작 이런 지역에 이런 학교라니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아홉이나 열 살의 때 묻지 않은 학생들과 소박한 주민들의 생활모습을 접해 보면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훨씬 더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논밭에서 일할 때면 으레 새참을 같이 먹곤 했다.
“애들아, 너희들 자전거 처음 보니?”
“아니에요. 장수에 가면 많이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소란을 떠니?”
“우리 학교에 처음으로 자전거가 왔어요.”
“그러니? 그럼 실컷 보렴.”
그런데 언젠가 분교가 되더니 아예 폐교가 되었다. 폐교된 지 십수 년이 지났다. 지금은 저수지를 만들고 있다 하류에 큰 댐을 막았다. 학교가 있던 마을은 아예 없어졌다. 학교 터는 100여 m의 저수지 바닥이 되어 있었다. 저수지 주변의 새로 만든 도로에서 보면 바닥이 아득하게 멀어 보인다. 아직은 담수하지 않아 바닥이 보이지만 머지않아 물이 채워지면 영원히 물밑에 가라앉아 버릴 것이다. 짙푸른 물 표면을 바라보면서 초임 시절의 그림을 그려 보아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