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3월 청운(靑雲)의 꿈을 안고 산 높고 골짜기 깊은 ‘비행기재’ 아래 영대산 산자락에 위치한 장수 산서초등학교를 첫 시발로 성스러운 교직의 길로 접어 들어 첫 제자들을 만난지 어언 36 개성상(星霜)이 참으로 눈 깜작할 사이에 흘러갔다. 이것이 세월의 무상함이리라.
서해가 바라보이는 너른 평야(군산 대야)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며 유, 소년기를 거쳤고 호남의 명문고교(남성 고)에서 인생의 청년기 교육을 받으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제2세 교육의 뜻을 품고 전주교대에 입학, 2년 동안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키운 후 교대를 졸업 교사로의 성스러운 길을 걷게 되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첫 발령을 받는 대부분의 교사들은 2, 3년 정도 근무하면 여우가 제 굴을 찾아가듯 수구초심(首丘初心)으로 고향을 찾아간다. 지금처럼 대중교통이 편리하거나 자가 승용차가 있는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수 백리 떨어진 산골짜기 오지마을에 발령을 받는 교사들은 곧 고향을 찾아 가버리곤 했다. 교장선생님께서도 그러리라고 작정하셨다. 그러나 막상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학교생활이 너무 좋을 뿐만 아니라 정들어서 6년간이나 근무를 하셨다 한다. 지금도 그때의 제자들 수십 명과 사제의 정을 교류하시면서 1년에 몇 차례씩 만나시는 것을 보면 참 부러울 뿐이다.
제자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성실과 열정으로 교육하셨다. 특히 교장선생님의 특기인 ‘글짓기’ 지도에 심혈을 기우려 각종 대회에 나가면 우수한 실적을 거두곤 하셨다. 학생들 자신의 꿈 실현(實現)은 물론 사고력 신장과 바른 인성 및 지성을 길러주는 데는 독서와 글짓기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신념을 갖고 계셨다. 글짓기 지도교사 상을 여러 번 수상하셨고, 각종 대회에 심사나 지도위원으로 활동하셨으며 문인교사들에게도 항상 존경의 대상이셨다.
1998년 9월 다른 동기들 보다 빠르게 ‘교감’으로 승진하셨다. 3년 6개월의 최단기간 완주 소양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시다가 2002년 3월 진안 주천초등학교 교장으로 승진하셨고, 2004년 3월 본교(원평)에 부임하셨다.
우리 교장선생님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면, 아침 일찍 출근 하시어 교문 앞 횡단보도에서 녹색 어머니들과 교통안전 및 등교 지도를 하신다. 학교생활의 첫 시작인 학생들을 한명, 한명 이름을 부르며 사랑하는 제자들을 부모의 마음으로 맞이하신다. 교장선생님은 혹 기가 죽어 있는 학생, 날개 잃은 학생은 없는지?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에게는 칭찬을 하시고 늦게 오는 학생들은 서두르라고 재촉 하면서 학교생활을 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시려 그들의 학교생활을 염려하시는 것이다.
300여 명의 학생들 이름을 모두 아신다. 심지어는 성격은 물론 가정 형편 그리고 그들의 꿈까지 다 꿰시는 것 같다. 짧은 기간에 전교생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울 건데 평상시 학생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시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 짐작이 간다. 담임교사가 출장을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보결수업을 맡으신다. 이 시간이 교장선생님께는 학생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된다. 보은교육, 글짓기교육, 생활교육, 효경교육 및 스승과 제자사이의 부담 없는 친교의 장이 되는 것이다.
날마다 교장실에서 10여 명의 학생들이 점심시간 또는 방가 후 시간이면 교장선생님과 사랑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때로는 그들과 머리를 마주대고 진지하게 상담을 하신다. 학생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신다. 애로사항을 확인하고 가정이야기, 친구이야기 등 무슨 말이든 다 들어 주신다. 주로 칭찬을 많이 하시어 학생들의 자긍심을 키워주면서 은연중에 학생 개인에게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치유하기 위해 애쓰신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시다 보니 교장선생님께서는 학생들과 절친한 친구가 되고 대변자가 되는 것이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매일 학생들에게 친필 쪽지 편지로 격려 하거나 칭찬하신다. 때로는 이메일로 학생들의 근심과 걱정을 함께 하신다. 편지를 받는 사람은 어른 학생 구분 없이 누구나 좋아한다. 대화도 중요하지만 직접 할 수 없는 말을 편지에서는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지를 보내면 답장이 온다. 그 답장 속에서 그 어린이의 모든 것을 읽으신다. 아침 교문에서나 복도에서 지나치다 만나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격려해 주신다. 교장선생님의 지극한 관심과 배려를 받는 학생들의 마음은 어떨까? 나를 알아주는 교장선생님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는 무척 클 것이다. 인성지도 아닌 인성교육 바탕위에 참 교육을 몸소 실천 하시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고마운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신다. ‘나의 영광’도 ‘학교의 자랑’도 모두 교직원들의 공이라고 말씀하신다. 선생님들의 애쓰심이 바로 오늘의 성과라고 여기신다. 모두에게 보내는 사랑과 신뢰가 가족 같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것이 참다운 혁신 리더십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랑과 열정으로 꽃피운 교육애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이제 몸소 실천한 성직(聖職)의 길을 조용히 자리를 떠나셔야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데 그 나이 때문에 아직도 불타는 정렬을 접으셔야 한다. 모닥불은 초라한 성냥 불씨 하나로 시작되지만 활활 타는 불꽃으로 이내 번지다가 가물가물 조용히 사라진다. 그러나 62세의 교장 선생님은 아직도 웅장한 불꽃을 내며 타오르는 캠프파이어의 절정의 불꽃이다. 그런데 이제 그 불꽃을 강제로 아니 스스로 꺼야만 한다. 인위적인 형식적인 ‘룰’ 때문이다.
존경하는 교장선생님의 안녕과 강건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이제 조용히 보내 드린다. 교장선생님 앞길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