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해가 뜨고 지고 하지만 어느 날이나 누구에게는 특별한 날일 수가 있다. 모두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하루를 특별한 뜻을 부여하며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그만큼 가치가 있는 날이거나, 기억 할만한 날이어서 일 것이다.
그렇다. 오늘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만한 날이다. 오늘은 나에게 D-100일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무엇에 대해서 D-100일인가?
내가 교직에 발 들여놓은 지 42년. 그 긴 세월을 마감하고 정년을 맞기 100일 전이라는 말이다. 정년이라는 것은 이제 맡아 왔던 일을 끝내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아주 어린 중학교 1학년부터 '스승'이라는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이제 만 49년을 살아온 셈이 된다. 사범학교 병설중학교를 입학하자 모자에는 스승 '師'자를 모표로 달고 다녀야 했다. 그래서 시내 어디를 가도 비록 중학생이지만 항상 사범학교 학생 취급을 당했다.
"장차 선생이 될 사람이 그러면 쓰나?"
"선생이 되겠다는 학생이 당연히 그래야지."
잘못하면 스승사[師]자 때문에 더 호된 꾸중이 날아오고, 잘해도 칭찬보다는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는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스승의 길]을 걸어 온 셈이다. 중학교 3년, 사범학교 3년의 중, 고등학교 6년에다가 사범학교 막내인데 교대 1회생과 함께 배출되어서 발령이 1년 늦게 났으므로 도합 7년은 선생도 아니면서 선생처럼 몸조심을 하며 살아온 시간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나는 엄밀히 따져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 1957년 4월7일부터 언제 어디를 가도 따라 다니는 스승 師를 머리에 새기고 다녀야만 하였으니 49년이다.
반 백년을 몸 담아온 교직을 이제 100일이 지나면 그만두고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이런 나에게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교장선생님 착잡하고 걱정이 되시지 않으셔요?"하고 묻곤 한다. 그러면 나는 "무슨 소리야. 이제 떠날 때가 되어서 떠나는 게 무엇이 섭섭해. 난 50년이란 세월을 선생이라는 굴레를 쓰고 살아온 셈인데 이제 그 굴레를 벗어 던지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어서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하곤 한다.
그러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긴 교장선생님은 정년을 하시면 더 바빠지실 것 같아요." 하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40년 이상 해오시던 일을 그만 둔다는 것이 쉽지 않지 않겠어요?"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해본다. 내가 교직생활 42년 동안에 직접 담임을 했던 27년 동안에 가르친 제자가 약 1,000명이 되고, 관리직으로 다니는 동안 몇 천 명을 배출하였다. 그 많은 제자들 중에서 나에게서 어떤 행동 때문에 또는 잘 못한 말 한 마디에 상처를 입었던 제자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리고 나를 마음속으로나마 '스승'으로 여겨줄 제자는 몇 명이나 될 것인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 속담에 '만 날 해봐야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만 날(10,000일)은 27년하고도 몇 개월이나 되는 긴 세월이다. 나는 이미 15,000날이 225일이나 더 지나고 있다. 그 많은 세월 동안 나름대로 게으름 피우지 않고 꽤 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 왔다고 생각은 되지만 그래도 과연 무엇을 남겼는지 찾을 길이 없다. 다만 큰 죄 짓지 않고 무사히 정년을 맡게 된 것만도 다행이다싶을 뿐이다.
앞으로 100일 후 나는 그러니까 1만5325일 동안 교직 생활을 하게되는 셈이다. 그래서 내가 그 동안 교직생활에서 겪은 일, 느낀 일, 건의할 일들을 경향 각지의 신문이나 잡지, 사이버상에 발표한 글을 모아서 작은 책자를 만들어 볼까 한다.
1만5325일. 어쩌면 엄청난 긴 세월이다. 아니 내 일생에서 스승 [師] 자를 달고 살아온 날을 계산한다면 거의 18,000<17897>일이다. 퇴직을 한다고 선생이었다는 굴레가 완전히 벗어진 것은 아니겠지만, 이제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 100일 후에 정년을 하고도 결코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D-100일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