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의 형편으로 영어를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온 국민이 모두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것도 지나친 교육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어를 사랑하고 확실하게 아는 아이가 자신과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영어를 배우는 것과 영어를 잘하면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우리말도 잘 모르는 현지인 교사에게 영어를 배우는 것이 어찌 같을 수 있을 것인가? 말이란 필요하면 반드시 배우게 마련이니 국가나 기업이 합당한 대우를 하면서 필요한 인재들을 양성한다면 국익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수는 절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말이란 감정의 표현이기도 하기에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과 같은 감정으로 말을 구사할 수 없는 것이고 보면,영어가 이렇게 설치니 우리의 문화가 서구 문화에 억눌려 멍들어 갈 것도 틀림없다. 설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국민들, 특히 자라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해서 나라의 부강을 이루고 많은 외국 사람들이 우리의 말과 글을 익히려고 애쓰는 강국의 건설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가르치는 것이 지도자들이 할 일일 것인데, 영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치 국가의 정체성을 잊은 것 같은 지도자들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국민을 영어를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국가정책보다는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국가의 교육을 책임진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3학년을 담임하면서 아이들의 글씨 쓰는 것을 보면 필순에 맞지 않게 쓰는 것은 다반사요 틀린 글자를 쓰는 아이들도 상당수 있다. 그런데도 너무 가르칠 것이 많아 틀린 글자를 바르게 익힐 시간이 없다. 방과 후에 개별지도를 하려해도 아이들은 영어 배우기 바빠 남아서 국어 배울 틈이 모자란다.
선생님이 가르치지 않고 게을러 시간 탓만 한다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이제 초등학교 1,2학년까지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교육부 발표에 서울 강남의 영어 유치원은 월 백만원 정도의 교육비에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대기자 명단에 올려 몇 달을 기다려야 입학이 되는 유치원도 흔하다니 형편이 되어 어학연수를 가는 집안 아이들과의 형평을 맞추느라고 애쓰는 정책처럼 보이기도 한다. 초등학교에서 1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조기 유학이나 어학연수가 절대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사교육비만 부풀려 질 것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영어로 길을 묻는 길손에게 영어로 대답할 능력이 있어도 자기 나랏말로 대답한다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국어사랑 이야기가 새삼 가슴에 저려온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만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프랑스가 못산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이 나의 과문한 탓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