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장'의 추억

2006.01.29 08:47:00

새해 첫날 설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새로움이 가득 차 있다. 한 해를 보내면서 한 살의 나이를 더 먹으면서 맞이하는 설이야 말로 다른 명절에 비해 싱싱함과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다. 새로운 다짐으로 자신의 바람직한 변화를 추구하고,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덕담으로 건강과 소원성취와 행복을 기원한다.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안녕과 풍요로움을 인사말로 주고받고, 조상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는 의식을 행하면서 우리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새해 새 소망과 함께 설을 맞는다.

나는 어릴 때 '대목장'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설이나 추석 명절 직전에 열리는 5일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동네의 어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대목장을 다녀온다. 십리 길 이십리 길의 신작로에는 대목장을 오고가는 행렬이 그치지 않았다. 머리에 이고, 등에 짊어지고, 지게에 싣고, 양 손에도 보따리를 들고, 서두르지 않으면서 무슨 얘긴가를 나누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걷는다. 내다 팔 물건을 가지고 가기도 하고, 설에 쓸 온갖 물건들을 사서 보따리 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가기도 한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가끔 대목장을 따라가곤 했다. 웬 사람이 그리 많은지, 웬 점포가 그리 많은지, 웬 물건들이 그리 많이 쌓여 있는지 어린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상인들이 호객을 하면서, 좋은 물건이라고 자랑을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주로 고무신들만을 팔고 있는 좌판의 한 중앙에 앉아서 두 짝의 고무신을 손뼉 치듯 맞때릴 때 나는 ‘펑펑‘ 소리도 꽤 크게 들렸다. 신나게 가위소리 박자에 맞추어 노래 부르면서 엿장수 아저씨의 우스꽝스런 모습도 재미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는 약장사들의 갖가지 공연도 볼만했다. 판소리 심청전을 부르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나의 아버지도 저런 곳에서 신나게 노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무렵 아버지께서는 판소리를 한창 배우고 계셨다. 틈만 나면 작은 메모지에 깨알같이 적힌 판소리 가사를 보면서 부르던 노랫소리와 똑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이 먹고 싶고, 팥죽이 먹고 싶고, 콩 박힌 알사탕도 먹고 싶고, 떡도 먹고 싶었다. 어머니 치맛자락에 매달려 혼잡한 사람 사이를 이리저리 따라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것 중에서 먹고 싶은 것들이 나의 입맛을 자극했다. 조르고 졸라서 겨우 팥죽 한 그릇과 셈비과자와 꽤 큰 설탕가루가 묻어있는 알사탕을 먹었지만 만족할 만한 양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 호주머니에는 내 맘대로 사먹을 수 있는 용돈이 한 푼도 없었다. 그래도 대목장에나 따라왔으니까 그 만큼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대목장은 다른 때보다 시장 규모가 훨씬 크다. 설 명절에 쓸 물건과 적어도 몇 달 정도 쓸 생활용품도 구입해야했다. ‘설빔’이라는 새 옷 등은 꼭 사야했다. 새 양말, 새 옷, 새 내복, 새 모자, 새 장갑, 새 신발 등 설날 만큼은 새로운 냄새가 물씬 나는 깨끗하고 예쁘고 산뜻한 새 것으로 갈아입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제수용식품의 구입, 각종 생활용품의 구입 등 대목장은 규모가 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설날 새벽 미지근하게 데운 물을 큰 통에 떠다놓고 오랫동안 씻어내지 못한 묵은 때를 재미있게(?) 벗겨 주신다. 개운해진 몸이 날 것 같이 상쾌하다. 대목장에서 사온 새 것 냄새 물씬 나는 새 옷가지들을 입는다. 어느 것 하나 새 것 아닌 것이 없다. 그때의 느낌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그 냄새들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빨리 나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흙이 묻을까 옷이 찢기지 않을까 염려되어 제대로 마음 놓고 놀지도 못했다. 그렇게 설빔은 내게는 신비롭기까지 했었다.

요즘 대목장이란 말은 듣기 어렵다. 명절을 앞두고 장보기할 것을 모으고 모았다가 한꺼번에 구입해야 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교통의 발달은 걸어서 시장에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설빔을 별도로 장만할 필요가 없어졌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시기에 관계없이 구입하기 때문이다. 새 양말 새 옷 새 신발에 감격하며 좋아하던 정서는 이미 수십 년 전의 어렵던 시골 어린이들의 모습일 뿐이다. 긴 행렬들이 모여서 대목장을 이루고, 파는 사람 사는 사람들이 만나서 정을 나누던 그 모습은 나의 어릴 적 추억 속에만 있을 뿐이다. 대목장의 많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던 때가 아련하다.
이학구 김제 부용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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