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태우기 축제가 열리는 화왕산으로의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같은 날 노래방기계까지 갖춰놓고 대보름 맞이 척사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고향으로 발길을 향했다.
친구들과 마을에 도착하니 ‘내곡동 주민을 위한 화합의 한마당 큰잔치 척사대회 및 주민노래자랑’이라는 글자가 크게 써있는 플래카드가 맞이한다. 내 고향 소래울은 80여 호가 오순도순 살고 있는 도시근교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그런데 서로 사는 것이 바쁘다보니 구정 때에도 얼굴보기가 어려웠다.
애향심마저 예전과 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몇 명이 서둘러 대보름날 마을주민과 출향한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경비는 또래들끼리 만든 몇 개의 모임에서 십시일반 찬조를 했다. 구정 때 친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우리 모임도 이번 행사부터 동참하는데 만장일치로 찬성을 했었다.
척사대회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승부에 매달릴 필요도 없이 먹고 마시면서 하루를 즐기는 자리였다. 나같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고향을 지키고 있는 어른이나 선배들에게 인사도 하고 후배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날이었다. 어쩌면 고향사람들과 옛날이야기를 하며 가슴 속 어디엔가 꼭꼭 숨겨두고 있던 보물을 찾아내는 추억 찾기 날이었다.
무성이 형은 남이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혼자 떠들지만 아무도 대꾸를 않자 혼자 소주잔을 비운다. 지금은 술중독자로 손가락질 받지만 젊은 시절 술집에서 깽판을 부릴 정도로 호기가 있었던 형이다. 모두들 추억 속의 옛 모습이 아님을 발견하며 세월이 무상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풍으로 쓰러졌다 회복중인 선배가 나타나자 술상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이나 윷놀이하던 사람들이 모두 에워싸고 자기 일인 양 축하를 한다.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히는 게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 사는 곳에서는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늘만은 플래카드 밑에 걸려있는 찬조자 알림표도 부담스러운 고지서가 아니라며 모두들 즐거워한다.
친구 엄마가 싱글벙글 옆으로 다가와 4승에 동그라미가 찍혀있는 표를 하나 보여준다. 윷놀이에서 승리할 때마다 주최 측에서 도장을 하나씩 찍어주는데 그냥 하나 찍어달라고 떼를 썼단다. 그랬더니 몰래 하나 찍어 주더라며 한마디 하신다.
“작년에 보니 이렇게 해서 색시들이 상을 다 타가잖어”
농촌의 놀이에서 빠질 수 없는 게 풍물이다. 갑자기 급조된 팀이건만 제법 그럴싸하게 가락이 맞는다. 풍악소리가 울리자 술상 앞에 앉은 남자들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윷놀이하던 여자들까지 흥겨워한다.
변화의 물결이 급박하게 불고 있는 데 어느 곳이라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겠는가? 이제 고향도 내 추억 속에 존재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 유일하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붕의 함석마저 낡아버린 시골마을의 방앗간이다. 그런데 마침 방앗간 옆에 있는 마을회관에서 윷놀이를 하고 있었다.
덤으로 옛 추억을 떠올리며 방앗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고물이 되어 방앗간 밖에 방치되어 있는 큰 방아를 보니 ‘삐그덕 삐그덕’ 소리를 내며 힘겹게 돌아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지 궁금해 하며 내가 있는 곳으로 왔던 사람들도 옛날 방아를 보고는 한마디씩 한다.
“이런 골동품이 지금 어디 있어”
“완전히 고물이네”
“이거 옛날에 우리가 보던 그 방아여”
세상이 많이 바뀌고 변했어도 고향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세월의 무게만큼 짊어진 짐이 무거워도 고향에 가면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는 언제, 누구는 어떤 일로 인생살이 거역 못해 세상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 안타깝지만 고향에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옛 추억이 있다. 골동품 같이 오래 된 것이 더 빛나는 게 고향이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고향이 없다. 고향이 없으니 소중히 생각할 만큼 중요한 추억거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교육계에도 여러가지 변화의 조짐이 불고 있다. 그렇더라도 학교는 훗날 고향 같이 사람들의 가슴을 포근하게 해주는 쉼터 역할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