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재래시장에 다녀오다

2006.02.13 15:37:00

아이들의 개학을 앞두고 오랜만에 외식을 하기로 했다. 방학이라고는 하지만 가족끼리 여행 한번 제대로 다녀온 적이 없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학원 생활과 공부로 바쁜 생활을 보내야 했고, 우리 부부 또한 각자 생활에 충실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를 하여 주말을 이용해서 가족끼리 조촐한 저녁 식사라도 할 요량이었다.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식사 메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양식으로 결정하였다.

토요일 저녁, 양식을 잘한다고 소문난 레스토랑을 찾았다. 아이들은 음식이 나오자마자 게 눈 감추듯 후딱 접시를 비웠다. 천천히 먹으라고 여러 번 주문도 해 보았으나 아이들은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만 집중을 하였다. 아이들의 음식이 부족한 듯 하여 앞에 놓인 고기 두 점을 썰어 내 입에다 넣고는 나머지는 모두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비록 내 입에는 맞지 않았으나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준 걸로 만족을 느껴야 했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식사를 하고 난 뒤,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시장을 둘러보았다. 늘 시장은 서민들의 삶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반기는 사람은 없어도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곳이기도 하였다. 때로는 시장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떤 희망과 위안을 얻곤 한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도 없는 시장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이웃이기도 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곳에 대형 마트가 생긴 이후로 그나마 한 달에 두 번 정도 찾곤 했던 시장마저 요즘 거의 가지 않는다. 시장과 비교해 보건대, 모든 점에서 쇼핑하기에 편리한 마트에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구입하는데 익숙해져 가는 자신에 왠지 모르게 씁쓸함이 감돌았다.

거리 좌판 위에 온갖 나물과 생선을 펼쳐 놓고 물건을 파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릴 적 내 어머니의 모습도 간헐적으로 비추어졌다. 파는 나물보다 덤으로 주는 나물이 더 많으면 손해 보는 것을 알면서도 할머니는 인상 한번 쓰지 않는다. 그리고 뒤돌아 서가는 사람에게 다음에 또 오라는 말을 꼭 덧붙인다. 그게 인연인가보다.

할머니는 사소한 인연 하나도 소중히 여기는 듯 했다. 그리고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연탄불을 지핀 화덕에 손을 녹이는 할머니의 얼굴 위로 행복이 묻어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내 호기심을 자극한 무언가가 좌판 끄트머리에 놓여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청국장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문득 어릴 적 겨울철에 어머니가 끓여 준 청국장이 생각났다. 냄새가 지나치게 자극적이어서 눈살을 찌푸린 적도 있었지만 그 맛을 알고 난 뒤부터는 다른 어떤 음식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양의 인스턴트 음식에 길든 아이들이기에 청국장 맛에 어쩌면 혀를 내 두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청국장 냄새에 코를 막고 온갖 인상을 쓸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일까? 그래서 아이들 모르게 아내의 옆구리를 쿡 찔렸다. 내심 아이들이 출타한 시간을 이용하여 한번 사건을 벌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아이들 모르게 청국장을 두 개를 얼른 챙겨 가방 안에 넣었다. 아내의 그 어설픈 행동이 어찌나 우스운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였다.

그 날 밤. 저녁 식사가 부실한 탓인지 뱃속에서 계속해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내 몰래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먹을 만한 것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찬장과 냉장고를 다 뒤져도 당장 허기진 배를 채울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늘 있었던 라면마저 오늘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떠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바로 청국장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시장에서 사온 청국장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청국장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끓이기 전, 어떤 냄새도 나지 않던 청국장이 한번 끓기 시작하면 지나친 냄새로 우리의 후각을 자극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건 6달 이상 걸려야 먹게 되는 된장과는 달리, 청국장은 3일 후면 금방 먹을 수 있어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 보았다.

자고 있는 아이들이 눈치라도 챌까 봐 조심스럽게 아내를 깨웠다. 아내는 나를 보자 내 눈빛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아는 듯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청국장을 들고서 그 옛날 어머니께서 끓여 준 그 맛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계속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나는 아내를 믿었다. 특히 아내의 요리 솜씨는 동네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아내는 그 어떤 음식도 십 분 안에 뚝딱 만들어 낸다.

아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혹시라도 청국장의 냄새가 잠자는 아이들을 깨우기라도 할까 봐 아이들 방문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난 후 창문 모두를 활짝 열었다. 잠시 후, 청국장의 그 자극적인 냄새가 온 집안을 진동하였다. 아내는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청국장 한 스푼을 떠 맛을 음미하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의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아내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청국장 한 스푼을 입에 넣어 주었다. 그 옛날 어머니가 끓여 준 그 맛은 아니었지만 진국이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시간이었다. 한밤중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아내와 나는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 또한 눈치를 채지 못한 듯 식사에만 전념하였다. 다만, 어젯밤 먹었던 청국장의 구수한 맛만 내 혀끝에서 감돌고 있었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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