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인 내가 닮고 싶어 안달하는 아이들 세상

2006.02.16 08:41:00

아이들을 하교시키려는데 한 아이가 울상을 지으며 볼멘소리를 한다.

“선생님, 제 엠피쓰리 없어졌어요.”
“뭐, 엠피쓰리가 어떻게 없어져?”
“얘가 아침에 책상 위에 뒀다는데 없어요.”
“분명히 우리 반에 범인이 있어요.”

범인까지 단정 짓는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침에 운동장으로 공놀이 하러 나가면서 친구에게 맡겼고, 맡은 아이는 자기 책상 위에 놓아둔 엠피쓰리가 없어진 것을 이제야 발견했다는 것이다.

평소 수업에 방해가 된다며 엠피쓰리를 학교에 가져오지 말라고 주의를 줬었다. 그런데 몇 명의 아이들이 어깃장을 부리더니 기어이 학기말에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더 황당한 것은 분실한 사람의 잘못이 더 크다는 것을 여러 번 애기했었는데도 잃어버린 아이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아이들의 소지품 검사를 요구했다.

못들은 척 아이들에게 자기 주변에서 엠피쓰리를 찾아보게 했지만 마음이 집에 가있는 아이들은 이곳저곳에서 소란만 피워댔다. 엠피쓰리에 욕심을 낸 아이가 있었다면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깊숙이 숨길 만큼 시간상 공백이 컸다. 또 엠피쓰리를 찾느라 하교가 늦어지면 학부모나 학원으로부터 원성을 살 우려도 있었다. 혹 엠피쓰리가 가방 등에서 발견되면 내일 아침에라도 꼭 가져올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애지중지하던 물건을 잃어버린 서운함에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나보다. 한참 후에 보니 아이들 몇이 교실을 샅샅이 뒤져 가며 엠피쓰리를 찾고 있었다. 소지품 검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도 털어놨다.

“소지품 검사 왜 안했어요?”
“선생님이 소지품 검사를 했으면 찾았단 말이에요.”

아이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순간에 관심도 없고 능력도 없는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관심한 교사, 무능력한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소지품 검사를 하지 않은 이유를 알려줘야 했다. 잘 있는 책걸상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은근슬쩍 말을 걸었다.

“너희들, 선생님이 범인으로 의심하며 소지품 검사를 하면 기분 좋겠니?”
“아니오.”
“만약에 엠피쓰리를 가져간 아이가 다른 아이의 가방에 넣어뒀다면 어떻게 되겠니?”
“???...”

말이 없는 아이들에게 나는 혼잣말을 이어갔다.
“엉뚱하게 범인으로 몰린 아이가 입는 피해를 누가 책임질 수 있겠니?”
“사실 엠피쓰리를 못 찾더라도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기 싫었던 거야.”

아이들은 나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미안해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을 믿으니 하루만 더 기다려 보자는 얘기도 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아이들은 환한 얼굴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부터 없어진 엠피쓰리에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행방이 묘연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실마리가 풀려 엠피쓰리에 욕심을 낸 아이의 윤곽이 잡혔다. 나는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며 잘못을 뉘우치게 하기로 했다.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여러 번 주인에게 돌려줄 기회를 줬다. 하지만 아이는 전혀 반성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욕심낸 아이가 누구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알려지고 있었다. 아직은 어린 새싹이라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게 안타까웠지만 더 기다릴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아이와 통화를 했다.

엠피쓰리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3일 만에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은 채 해결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위안으로 삼는다. 완전하지 못한 게 사람이다. 누구나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한다. 다만 ‘누가 더 빨리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걱정과 근심을 빨리 잊을 수 있어 아이들 세상은 천국이다. 오늘도 우리 교실에서는 엠피쓰리를 잃어버렸다고 울상이었던 아이나 잠깐 욕심을 부렸던 아이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싱글벙글한다. 어른인 나마저 그들을 닮고 싶어 안달을 한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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