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책 빌리면 안 되나요!

2006.04.10 08:41:00

요즈음 아이들 책 많이 읽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말들이 우리 어른들이 지어낸 공허한 말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도서관을 새롭게 정비하고 아이들이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환경을 제대로 갖춘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새삼 아이들이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 시간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도서관을 맡고 있는 담당자로서 마음이 뿌듯하다. 특히 신간이나 인기 있는 책들을 서로 빌려가려고 싸우는 경우도 종종 있어, 속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안타까움

새롭게 도서관을 꾸미면서 도서관은 단순히 책만 빌리거나 읽을 수 있는 공간에 한정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특히 문화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시골의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도서관이 필요하지 싶었다.

본교와 같은 시골 고등학교에는 한글을 제대로 해득하지 못한 아이들이 종종 나온다. 물론 육체적, 정신적 질병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제 시기에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있다.

가끔은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제때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혹은 그들에게 알맞은 교육을 받지 못해 읽고 쓸 수 없는 안타까운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되어 교사로서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물론 학생 개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쉽사리 습득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힘든 면이 많다.

매일은 도서관에 못가도 가끔씩은 도서관에 가서 아이들이 무슨 책을 빌린는지, 혹은 무슨 책들을 읽고 있으며 관심을 두고 있는지를 새심하게 살핀다. 많은 아이들이 여기저기에서 책을 뽑아 가지고 와서 대출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낀다.

“○○이 넌 왜 책 빌리는데….”
“그냥요….”
“괜히 책만 지저분하게 만들어 가지고 오려거든 빌리지 마라. 다른 아이들이 읽지 못하잖아.”
“알았어요, 갔다 놓을께요.”

그 장면을 목격하고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 앉는 것이었다. 책을 빌려 주는 도서위원은 주로 2학년 아이들이 맡고 있었다. 자발적으로 아이들이 동아리를 조직해 대출 업무를 맡아 주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잘 운영되고 있었고, 아이들도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아이도 책을 빌리지 못한다는 규칙은 없었기 때문에 그런 태도는 쉽게 용납할 수 없었다.

“○○아, 왜 그 아이에게 책을 빌리주지 않았니.”
“선생님 그게 아니고요, 읽지도 못하는데 괜히 빌려가면 다른 아이들이 못 읽을 것 같아서요.”
“그래도, 책을 빌리고자 하는 그 아이의 생각도 존중해 주어야 하지 않겠니.”
“알겠어요, 선생님.”

대출 위원을 맡고 있는 아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넨 후에 도서관 한 모퉁에서 뭔가를 열심히 읽고 있는 ○○이를 발견하였다. 아마 만화책이지 싶었다. 한 장 넘겨가면서 뭔가 입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스스로 하는 것 같은데, 멀리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소리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힘겹게 자신과 싸우고 있는 ○○이

그 아이는 종종 책읽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지능적으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읽고 쓰는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는 아이였다. 물론 완전히 그 기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종종 교과서 읽기를 시켜보면 자신감 없는 표정에 떠듬거리는 모양새가 다른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종종 새빨개진 얼굴로 자리에 앉곤 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몫을 다 해 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대견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아이였다.

물론 교사로서 그 아이가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나름대로는 배려한다고 하지만, 그 일도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하려는 의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사로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우연하게 점심을 먹고 나서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선생님 전 도서관에서 책 빌리는 안 되나요?”
“왜 빌려도 되지, 도서관에 있는 책들이 누구는 읽어도 되고, 누구는 읽지 말라는 법은 없었니까.”
“건데, 가끔 대출을 맡고 있는 형이나 누나들이 저는 책을 빌리지 않았음 하는 눈치를 줘요.”
“선생님도 며칠 전에 봤어. 그래서 선생님이 그 형이나 누나들에게 좋게 이야기 했어. 다음에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어.”

“그럼, 선생님 도서관에서 책 마음대로 빌려도 되요.”“그럼, 건데 주로 어떤 책을 빌려보니?”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제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거, 그래서 주로 만화책을 많이 읽어봐요. 그림과 보면 그런대로 이해도 되고 해서….”
“그러니, 열심히 읽어 봐라. ○○이는 아마 의지가 강해서 꼭 잘 읽을 수 있을 거야.”

마음이 편해졌다. 의외로 솔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 해 주는 ○○이가 무엇보다 대견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자신이 제대로 읽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무던히 노력하는 ○○이를 보면서 내심 스스로 부끄럽기까지 했다. 왠지 그 아이에게 스승으로서가 아니라, 제자로서 한 수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종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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