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교육계에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듀나’라는 영화평론가 겸 소설가가 교사들을 향하여 저급한 독설을 쏟아내어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스승의 날’이 휴무일로 되면서 이젠 ‘스승의 날’도 잃어 버렸다. 오월이 조용히 스쳐 지나가기를 고대하였지만 오월이 되자마자 정부여당에서는 ‘교감제 폐지’를 들고 나와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있다.
정말 한심한 생각이 든다. 현장의 교육활동을 제대로 이해하고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쳤는지 묻고 싶다. 지금 참여정부에는 ‘참여’라고 하는 거창한 수사만 있을 뿐 실제적인 ‘참여’는 없다. 편향된 시각에서 특정 세력의 의견만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교감이 필요 없으면 마땅히 폐지해야 한다. 그러나 대신 부교장을 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교감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정부나 열우당에서 제안하고 있는 법안이나 제도들이 이처럼 논리적 모순에 빠져 있다. 그래서 늘 비난의 대상이고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부분의 제안들이 교육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황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교감이 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교감의 하루’를 단 한 번이라도 따라 가 보라.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고, 그 동안 근무했던 학교의 교감선생님들은 담임이나 부장교사 이상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아침 자율학습에서부터 시작하여 저녁 야간자율학습이 끝날 때까지 늘 함께 하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때로는 교사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조정해야 하고, 교사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승진을 하고서도 저렇게 고생할 거라면 아예 승진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부교장 제도를 제안하면서 교감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이것은 교장선출제와 연결되어 있어 학교 현장을 정치판으로 만드는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선출제에서의 교장은 정치적 역량이 있어야 하고 대중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정치적이고 대중적 역량이란 교육에 대한 진정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인맥 관리를 통해서 길러질 수 있다.
또한 ‘부교장 제도’가 교장으로 선출되기 위한 주요 경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은 뻔하지 않은가. 교장은 누구를 부교장으로 지명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교장 선출에 공헌도를 감안하여 임명할 것 아닌가. 교원들에게 정치적 역량을 학습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몰라도, 교육의 본질 추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현행 교감제도와 차별화된 점이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개선된 점은 없는 것 같다. 개악이 지나지 않는다.
얄팍한 술수를 가지고 교원정책을 논해서는 안 된다. 교원정년 단축과 연계된 또 하나의 시도라는 지적도 있다. 그럴듯한 지적이다. ‘교감제 폐지 법안’에 따르면 승진 폭이 훨씬 좁아지게 되고 선출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절망하게 되어 조기 퇴직을 유인하는 기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다.
대통령도 혁신이 피곤하다고 속내를 보인 바가 있다. 정말 피곤하다. 획기적인 개선책을 내 놓아 누구라도 공감하는 제도라면 몰라도 제안하고 있는 정책마다 이해집단간의 싸움만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쪽저쪽 이야기도 들어보고 지금까지 제도의 틀에 맞추어 살아온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 보아야 한다. 제도의 희생자를 양산하는 개혁이나 혁신은 공감을 가져오기보다는 반발을 가져온다.
어떤 분야든지 구성원의 성장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조직에 활력이 있는 것이다. 교직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한 사람들이 수업전문가로서, 교육행정가로서, 교육전문직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논리적 모순에 빠지지 않으면서 교육적 본질에 맞는 정책 제안을 기대해 본다.
정말 열심히 가르치고 지도하는 교원을 원하는가 아니면 정치적 역량을 갖춘 교원을 원하는가. 더 이상 교원들을 ‘진흙 구덩이’의 정치판으로 끌어 들이지 말아야 한다. 정부나 여당에서는 교직안정의 토대 위해서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도록 지원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