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날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난 뒤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였다. 늘 그랬듯이 아내는 아들의 등교 준비에 분주했다. 녀석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는 채 가방 챙기기에 바쁘기만 했다.
어버이 날이기에 내심 녀석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기대했던 자신이 왠지 멋쩍기까지 했다. 결국 나는 카네이션 한 송이 달지 못한 채 출근을 했다. 그렇다고 녀석을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나는 아침에 있었던 일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자식들 이야기로 꽃을 피울 때는 정말이지 왠지 모르게 내 얼굴이 화끈거리기까지 했다. 한편으로 자식을 잘못 키운 것 같아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자식이 안겨준 실망감이 이렇게 까지 내게 허탈감마저 들게 할 줄 몰랐다.
퇴근 무렵이었다.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 또한 나와 기분이 같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여보,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요즘 아이들 다 그렇지. 뭐."
"저도 당신 기분 이해해요.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그러지 말고 우리 기분 전환도 할 겸 영화구경이나 갑시다."
"네. 그렇게 해요."
아내도 많이 속상했던 모양이었다. 아내의 목소리가 많이 죽어 있었다. 아내와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어버이날이라 다른 사람들은 자식들로부터 많은 축하를 받는다는데 아내와 단 둘이서 조촐한 식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씁쓸한 생각마저 들었다. 하물며 '자식 키워도 소용없다'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바로 그때였다. 막내 녀석으로부터 달갑지 않는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학원 차를 놓쳐 집으로 갈 수 없음. 태우러 오시기 바람.'
그렇지 않아도 녀석에게 실망하고 있는 터라 한편으로 괘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자식인 것을 어찌하랴. 마음을 진정시키며 녀석을 태우러 갔다. 그리고 학원 앞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녀석을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는 녀석이 무엇에 신이 났는지 계속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늘, 뭐 좋은 일이 있니?"
"아니요. 아빠, 저쪽에 차 좀 세우시면 안돼요?"
녀석이 가리킨 곳은 집에서 가까운 한 레스토랑이었다.
"왜 그러니? 여기서 누구를 만나기로 했니?"
"아니요. 그냥 잠깐만 세워주세요. 그리고 아빠도 내리셔야 해요. 알았죠?"
녀석은 차를 주차시키고 내리는 내 손을 잡고 레스토랑 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물어 보아도 녀석은 대답 대신 웃기만 하였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였다. 아내는 나를 보자 화들짝 놀라며 말을 꺼냈다.
"당신이 여길 웬일이에요?"
"아니, 그러는 당신은 여기에…?"
그러자 옆에 있던 막내 녀석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리고 가방에서 작은 선물을 꺼내 아내와 나에게 주면서 말을 했다.
"엄마 아빠, 늦게나마 어버이 날 축하드려요. 그리고 감사해요."
뜻밖의 일이었다. 아내와 나는 마치 누군가에 뒤통수를 맞은 듯 녀석의 얼굴만 빤히 쳐다 보았다. 평소 행동으로 보아 초등학교 6학년인 녀석의 머리에서 이런 생각이 나왔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녀석은 여자 친구의 도움을 받아 오늘의 깜짝 파티를 준비하였다고 하였다. 그 레스토랑 또한 친구 부모님이 경영하는 곳이었다.
아무튼 엄마, 아빠를 위한 녀석의 깜짝 파티에 우리 부부는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순간적이나마 녀석에 대해 나쁜 생각을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그 날의 식사는 최후의 만찬 이상이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