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50년, 개성은 아직도 이웃(1)

2006.07.05 1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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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9일 개성공단과 개성시내를 관광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북측의 근로자들을 만나보니 이미 통일의 물꼬는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개성을 방문하거나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3회로 나눠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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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오전 5시 30분 남북 경제협력을 위해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충북 중소기업인들이 청주를 출발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북녘 땅을 밟아본다는 설렘과 긴장감 때문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

달리는 차안에서 방문목적과 현지에서의 주의사항을 들었다. 주로 북측이 요구하는 사항은 지정된 장소 이외에서 사진촬영을 금하는 내용이었다. 경협을 통해 막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튼 마당에 방문목적에서 벗어난 행동으로 초청자에게 누가되지 말자는 다짐도 했다.

한강변을 달리며 가고서기를 반복하던 차가 아우토반 도로로 불리는 자유로에 접어들자 드라이브를 하듯 뻥 뚫린 차로를 신나게 달렸다. 임진각에 도착하니 남북분단의 현실이 몸으로 느껴진다. 임진각 다리를 건너면서는 민간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민통선이다. 민통선을 달려 도라산 CIQ(경의선도로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한 시간이 8시 50분경이다.

핸드폰을 반납하는 것을 시작으로 남측 출입사무소에서 출경수속을 밟았다. 경계선을 넘는다는 의미에서 출경이라는 말을 사용할 뿐 외국에 나갈 때와 똑같이 서류를 작성하고 검열대를 거쳐야 한다. 관광버스에 올라 북측 출입사무소로 향하는데 차로 양옆으로 고압선 전봇대가 개성공단까지 이어진다.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 비무장지대를 펄쩍펄쩍 뛰어다니면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고라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 만들어져 있는 동물이동통로를 바라보는데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옛 장단역 자리에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499km를 달리던 경의선 열차(근대문화유산 78호)가 6ㆍ25전쟁 시 포화로 벌집이 되어 녹슨 채 버려져 있다.

차량들은 모두 번호판을 가린 채 깃발을 꽂았다. 민간인들이 탄 차량에는 모두 황색깃발이 꽂혔다. 도로 옆으로 ‘개성시’가 크게 써있는 이정표가 들어온다. 뚜렷하게 경계가 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곳부터 북한 땅이다.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과 20여명이 논에서 직접 손으로 모내기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수속 밟는 시간이 길었던데 비해 10여분 만에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했다. 지척에 있는 남북이 왜 이렇게 오랜 세월 다른 이념과 체제로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해 입경수속을 밟았다.

내 차례가 되자 검열대에 앉아있던 북측안내원이 출입증을 유심히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문의초등학교가 어데 있습네까? 이번에 무슨 용무로 오셨습네까? 경협이 선생님에게 무슨 도움이 됩네까?”

학교는 충청북도에 있고, 경협을 위해 왔으며, 아이들에게 경협의 필요성을 가르치려고 한다는 말에 미소를 보낸다.

다시 관광버스에 올라 가까운 곳에 있는 개성공단의 로만손 협동화공장으로 갔다. 이번 방문을 추진해준 로만손의 김기문 사장이 환한 얼굴로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손목시계와 주얼리 분야에서 국내보다 해외에 더 많이 알려졌고, 남북경협에 대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로만손의 김기문 사장은 청주시내에 있는 주성중학교 동창이다.

우리가 돌아본 개성공단은 입주한 15개 업체 중 13개 업체가 공장을 가동 중이고, 가동 1년여 만에 영업이익을 내면서 대부분의 기업이 생산라인 증설을 계획하고 있었다. 개성공단은 질 좋고 값싼 노동력과 기술이 뒷받침되는 자금력이 만나 남북 경제협력을 통한 남북통일에 기여하고,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해 국외로 빠져나가던 중소기업들에게 새로운 활로를 터줄 것으로 예상된다. 남측에서 파견된 기술자 70여명이 북측근로자 740여명에게 기술을 전수하면서 그 중심에 우뚝 서있는 기업 로만손이 자랑스러웠다.

개성공단 사업은 지난 2000년 8월 현대와 북한이 합의해 개성직할시 일대에 800만평 규모의 공단과 1200만평 규모의 배후단지를 조성해 국내기업을 유치한다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튼 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이 해주에 공단조성을 요청했고, 남북경협에 관심이 많은 김정일 위원장이 해주보다 여건이 좋은 개성의 문을 활짝 열어주며 팽팽한 긴장이 흐르던 군사지역을 평화지대로 바꾸었다.

북한이 남측기업의 개성공단 진출을 위해 2002년 11월 개성을 공업지구(경제특구)로 지정하는 '개성공업지구법'을 마련했으며, 개성공업지구 개발업자로 현대아산을 지정했다. 공업지구법에 토지임대기간은 50년이며 연장할 수 있고, 통신수단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출입증명서를 가지고 지정된 통로로 사증 없이 다닐 수 있도록 통행의 자유도 보장했고, 특혜적인 경제활동 조건을 보장하면서 남쪽과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도 허용해 지금에 이르렀다.

김기문 사장의 안내로 로만손 협동화공장의 구석까지 다 돌아보며 북측근로자들이 일하는 모습도 지켜봤다. 매일 통근버스로 출퇴근한다는 근로자들은 방문객들의 눈길을 겸연쩍어하면서도 열심히 일했고, 남측의 기술지원을 받고 있어 좋은 작업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다. 다만 남측에서 온 기술자와 북측의 근로자를 한눈에 알아보게 하는 분단 50년의 역사가 안타까웠다.

통행방향을 알리기 위해 복도 여기저기에 그려있는 화살표의 방향이 우리와 달랐다. 영국, 일본, 태국 등 왕이 있는 나라들만 우측통행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북측도 우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회의실에 걸려있는 통일시계 그림을 보며 민족의 소원인 평화통일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랬다. 로만손에서 벽시계 5천개를 만들어 북측의 모든 소학교에 전달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들이 남북화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현대아산 사업소에 도착해 개성공단의 어제와 오늘의 역사를 보았다. 북측 안내원으로부터 2천만 평이나 되는 개성공업지구 개발 총계획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고 정주영 회장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업소 옥상에 올라 한창 건설공사가 진행 중인 공단을 둘러봤다. 날씨가 맑은 날은 서울 남산타워에서도 보인다는 송악산과 최영 장군이 참수 당했다는 덕물산을 안개가 가로막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바닷가와 가까워 송악산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단다. 북측 안내원은 송악산을 수줍음을 잘 타는 색시에 비유했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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