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오는 날

2006.07.27 10:24:00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아파트 옥상에서 배수관을 타고 내려가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밖을 쳐다보지 않아도 비가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구름이 하늘을 덮어 날이 어두워지면 마음조차 위축되는듯하다. 오전 내내 번쩍거리며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텔레비전만 바라보다가 베란다로 나갔다. 창 너머로 보이는 아스팔트가 더욱 검게 보이고 우산 쓴 사람들이 오고 간다.

어릴 때 이런 날이면 주로 방안에 갇혀있을 때가 많았다. 농한기이면서 일요일이기 때문에 가족 모두가 집안에 있을 때가 많았다. 당시는 텔레비전은커녕 라디오도 없었다. 하도 많이 보아 닳아빠진 만화책이 유일한 읽을거리였다. 심심풀이 간식용으로 볶은 보리나 콩을 먹으면서 빈 종이에 낙서 하고 그림이나 그려댔다. 하지만 지루한 시간을 메워주지는 못한다. 몸이 근질근질하다. 밖에 나가고 싶다. 우산조차 없으니 나가기도 쉽지 않다. 열어젖힌 문 밖의 비 떨어지는 모습을 보다가 처마 밑으로 나가 쪼그리고 앉는다.

초가지붕 처마 끝에서 줄줄이 떨어지는 물줄기가 흙마당 바닥에 탁구공만한 반구의 물방울을 만들어 낸다. 이내 터져버리고 또 만들어지고……. 둥근 물방울이 되는 원인이 표면장력 때문이라고, 대표적인 것이 비누방울이라던 담임선생님 말씀을 생각하면서……. 가는 물줄기지는 계속 떨어지고 그 힘으로 생긴 앙증맞은 물웅덩이가 한 줄로 줄을 맞춰 생겨난다.

떨어지는 집시랑물을 손바닥으로 받아본다. 손바닥에 부딪치는 물줄기가 간지럽다. 연신 만들어지는 물방울을 손끝으로 건드려본다 툭 터진다. 후후 불어도 본다. 조금 밀려나는듯하더니 역시 터지고 만다. 물방울 두개가 합쳐져 하나가 되기도 한다. 한동안 물방울과 어울려 정신을 판다.

짚으로 만든 썩은새의 옅은 갈색이 묻어 난 얕은 물흐름이 한쪽으로 흘러간다. 만들어진 물방울을 끌고 간다. 제법 넓은 마당 여기저기서 모여든 물들이 제법 큰 물고랑을 이룬다. 물고랑이 남새밭 옆을 지난다. 밭에서 비에 젖은 흙을 파서 둑을 만든다. 물이 점점 많아진다. 대여섯개의 호박잎을 잎자루째 끊는다. 잎은 따내고 속이 빈 잎자루를 연결하여 긴 호스를 만든다. 작은 저수지가 된 웅덩이에 한 끝을 집어넣고 다른 끝을 입으로 빨아 재빨리 아래로 내리면 괸 물들이 호스를 타고 계속 흐른다. 나오는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손도 씻어 본다. 아래쪽에 이리저리 물 흐름을 바꿔가면서 놀이는 계속된다. 물레방아를 만들어 돌려도 본다.

때로는 이웃의 친구도 합류한다. 각자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열심히 손을 놀린다. 역할 분담을 한 것도 아닌데 제 할 일을 잘도 한다. 종이배를 만들어 띄우고, 물길을 이리 저리 곡선으로 변형시키기도 한다. 어느 사이 옷은 흠뻑 젖었다. 갑자기 냉기가 몸속을 파고들며 추위를 느낀다. 친구의 입술이 파래진다. 중대가리 까까머리와 얼굴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간지럽다.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집에 들어간다. 감기 걸리면 어떡하느냐고, 몸에서 비 비린내가 난다고, 빨래가 잘 마르지도 않는데 빨랫감만 만든다고 질책을 듣는다. 홀랑 벗고 큰 물통 속에 들어가 물장난 같은 목욕을 하고 나온다. 때 아닌 이불을 둘러쓰고 새우잠을 잔다. 그렇다고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다.

요즘 어린이들은 여가 시간이 별로 없다. 학원을 전전하고 가정학습에 몰두해야 한다. 여가가 있어도 컴퓨터, 게임기, 조립식 장난감 등 전자제품의 전자그림을 보거나 전자소리를 들으면서 즐긴다. 길을 가다가도 문구점 앞 게임기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동전을 넣고 열심히 눌러댄다. 게임기 뒤쪽에 납작 앉아 있어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다. 자연과 벗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

자연은 건강이다. 자연과 함께 할 때 심신의 건강이 더욱 좋아진다. 자연과 함께 놀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이학구 김제 부용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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