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학년초 어느 날, 학교 교사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소란스럽던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시간이다. 이따금씩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말소리와 아동들의 대답소리가 새어 나올 뿐이다. 그런데 한적한 모퉁이에서 혼자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학생을 발견했다. 그 학생은 인기척에 고개를 휙 돌리더니 활짝 웃는다.
“선생님, 교감 선생님이지요?”
부임한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교감이라는 것을 아는 걸 보면 꽤 눈썰미가 있는 학생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3학년 동준(가명)이었다. 또래보다 몸집이 훨씬 컸다. 우량아 콘테스트에 나가면 입상이라도 할 것 같은 오동통한 체격이다. 믿음직스럽고 마음씨 좋은 인상이다. 순한 티가 묻어있다. 하얀 피부에 까까머리였다.
“그래, 그런데 왜 교실에서 공부하지 않고 밖에 있니?”
“공부하기 싫어요.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공부하기 재미없어도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할 일을 해야 하는 거야.”
“교감 선생님 이름도 알아요. 이학구지요?”
“와, 독똑하구나! 너처럼 내 이름을 아는 학생이 별로 없는데. 넌 대단하구나.”
내 칭찬에 동준이는 씨익 웃는다. 손을 잡고 교실까지 데려다 주었다.
동준이는 학습부적응아로 특수학급을 오가며 기초학습 훈련을 받고 있다. 일반학급과 특수학급을 오가는 사이에 엉뚱한 곳에서 딴전을 부릴 때가 많다고 했다. 교실 이동 중에 혼자만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 부임인사를 했었는데 담임도 아닌 교감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특히 모르는 사람과 첫 통성명을 할 때 금방 듣고도 돌아서면 겨우 성씨만 생각나곤 하는 내게 비하면 얼마나 우수한 능력인가! 그 날부터 동준이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작년 11월 학교 강당에서는 ‘현악4중주’ 실내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있었다. 키가 커서 맨 뒤에 앉아있던 동준이가 연주회 리플릿을 들고 내게 왔다.
“교감 선생님, 여기 학교 주소가요 잘못 나왔어요. ‘김제시’인데 ‘완주군’이라고 돼있어요.”
대단한 발견이었다. 오류를 찾아낸 것도, ‘완주군’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도 신통했다. 그리고 내게 가져와서 확인하는 것도 꽤 용기 있는 행동이기도 했다.
“응, 그렇구나. 잘못 썼구나. 야, 동준이 대단한데!”
동준이는 자랑스러운 듯 만면에 웃음을 띠고 싱글벙글 웃었다. 사소한 일이지만 자신감을 키워주는 대단한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
그 뒤로도 만날 때마다 다정하게 인사하고 자기의 관심사에 대해 거침없이 묻고 대답하면서 1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지금은 4학년 2학기, 그 때에 비하면 키도 마음도 무척 커버렸다. 수업 시간 중에 혼자 밖에서 노는 일이 없어졌다한다. 학습 부적응 태도는 많이 개선되었고 학급에서 맡은 우유박스 나르기 일인일책 업무도 꾸준히 잘 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담임선생님 심부름으로 교무실에 왔다. 키도 크지만 체격도 또래들보다는 훨씬 컸다. 반갑게 맞으면서
“야, 동준이 많이 컸구나. 씨름 선수 되겠는데?”
“선생님, 저 전주로 전학 갈 거예요.”
“왜?”
“씨름 배우러요.”
아마도 뭔가 소질을 찾아서 그 기능을 길러 줄 필요성에 대한 얘기를 부모님께서 하셨던 것 같다. 타고난 우수한 체격과 체력을 바탕으로 전주시내 씨름을 육성하는 학교에 보내겠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자녀의 재능을 조기에 발견하여 계발할 필요성을 잘 알고 계시는 부모님인 것 같다. 비록 학습력이 부족하고 또래들과 어울림이 좀 서툴지만 분명 동준이가 잘하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그 능력을 찾으려는 부모의 열린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1년 전만 해도 천방지축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었는데, 규칙이나 질서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 떼쟁이 동준이었는데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달라져 있을 모습을 생각하고 항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또한 개성과 재능을 조기에 발견하여 부단한 교육과 학습을 제공하여 그 방면에 제 1인자가 될 수 있게 교육을 제공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