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치제, 이름만 그럴듯하지 실제로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교육자치는 없다. 교육자치법안이 통과된 지 며칠만에 서울시교육청에서는 경악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부임 3개월밖에 안 되는 교장을 인사조치함으로써 최단기 교장재임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더욱이 전보사유가 지역 시의원과의 갈등 때문이라고 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교육감이 행한 이번 인사조치는 앞으로 우리 교육계가 얼마나 외압을 받을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역구 시의원과 학교예산, 공사 등 교육발전문제를 협의해오던 중 의견 충돌이 잦아지자, 그에 따른 보복인사라는 것이다. 지난 1일 서울시의회의 교육문화위원회 위원들은 시교육청의 예산심의를 그만 둔 채 정회를 선포하고 한 교장의 인사문제를 우선적으로 처리하도록 요구하였다고 한다. 서울시교육감은 이에 굴복하여 해당 교장을 인사조치하였고 그런 연후에야 예산심의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히 지방의회 의원들의 막강한 파워와 아울러 교육계의 무력함을 느낄 수 있는 사건이다.
이와 같은 부작용은 이미 충분히 예견된 것이다. 많은 교원과 전문가들은 개정된 교육자치법은 일반행정에 의한 교육행정의 예속화를 불러 올 것이라고 우려하였고 또한 반대를 하였다. 이 법안이 법적 효력을 갖기 전에도 이렇게 놀라운 위력을 과시되고 있는데, 만약 법적 효력을 갖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말 두렵다. 이번 사건은 왜 교육자치가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로서 충분하다. 교육자치가 지켜지지 않으면 교육기관장들은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와 코드를 맞추기에 급급하고 말 것이다.
교육의 자주성, 중립성은 이젠 교과서에나 나오는 낡은 지식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교육이 정치에 예속되어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구현할 수 없게 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갈 것이다. 교육은 정치세력의 시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지방의 정치세력과 결탁하지 않는 한 학교와 교육청에서 할 수 있는 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아무리 교육적으로 옳고 시급한 일이라도 지방 정치세력의 후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 일은 결코 원만하게 추진될 수 없을 것이다. 자기들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정회를 일삼고,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예산 지원을 미룬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선거과정에서의 서운함, 지방의회의 행정감사에서의 서운함, 이권 청탁과 관련한 것에서의 서운함은 바로 보복인사로 이어질 것이다. 지방정권을 장악한 의원이나 단체장들은 자신들과 다른 교육행정가의 정치적 입장이나 교사의 정치적 입장을 문제 삼으려 할 것이다.
새로 만든 교육자치법은 교육의 자주성과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매우 크다. 교육은 정치와 관계없는 백년지대계이다. 한 시기의 그릇된 인식을 가진 정파나 개인에 의해서 좌우된다면 우리나라 교육은 매번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 차제에 대통령은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만에 하나 이대로 법안을 공포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대응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을 수밖에 없다. 이미 교육자치법은 현행 헙법에 위배되고 있으므로 헌법소원이라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전교원과 교육을 사랑하는 국민들은 이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