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신문 보기가 겁이 났다. 왜냐하면 하는 일마다 현장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작년 초에 교장선출보직제로 한 동안 소란을 피우더니 올해에는 또 ‘무자격교장공모제’들고 나와 교육 현장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이 제도는 이미 교육개혁심의위원회에서 부결된 바 있는데, 얼마 전에 국무회의에서 전격 의결하고 말았다.
사실 지난 번 교육개혁특위에서 논의할 때보다도 더 부아가 난다. 교육개혁특위에서 부결된 내용을 하필이면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특별한 속셈이 있는 것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국무위원들의 교육에 대한 인식이 참으로 우려스럽다. 아마도 우리나라 국무위원들은 교육을 개그맨의 우스갯소리 마냥 “그까이 것”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세상에는 ‘아무나 할 수 일’이란 그리 흔하지 않다. 무슨 일이든지 거기에 상응하는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일정 기간의 훈련과정을 거쳐야 하고 연습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교장은 “무자격교장공모제”를 통하여 전문성이 없어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교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일까?
“무자격교장공모제”에 담긴 생각들을 유추해 보면 아무래도 우리나라 교육은 별 것 아니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 같다. 아니 교장의 역할 또한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교장이 단위 학교의 교육력 제고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 같다. 정말 교육이 ‘그까이 것’정도로 폄하되어도 괜찮은 것인지 궁금하다.
작년 연초에 교장선출공모제를 놓고 전국을 혼란을 일으켰다가 교육개혁특별위원회에서 부결시킨 내용을 또 다시 들고 나온 저의는 무엇인가. 또 다시 그 폐해를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전국 순회 공청회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정책에는 철학이 있어야 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에는 젊고 능력 있는 교원들이 교감, 교장 등 관리직으로 승진할 수 있는 승진규정을 개정한다고 소란을 피우더니, 그 승진규정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무자격교장공모제”를 꺼내 든 이유는 무엇인가. 도무지 원칙이 있고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 만든 제도인지 의심이 간다.
그렇지 않아도 교원조직은 수평조직으로 승진체계가 없어 조직이 침체되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높은 성취동기를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은 조직일수록 살아있는 조직이 될 수 있다. 서로 경쟁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야 조직의 생산성도 높아진다. 승진규정을 개정하여 유능한 교원을 관리자로 발탁하겠다고 하면서 10년 동안 근평 관리를 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물론 승진규정개정안에 대하여 찬성한 바 없지만, 이런 제도를 그렇게 힘겹게 만들더니만 시행하기도 전에 그 규정을 무력화시키는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세상의 모든 일이 고도로 전문화되어 가는 시점에 유독 교장자리만은 아무에게나 열어 놓을 수 있는 자리인가. 기왕에 개방하려거든 경찰서장, 연대장, 대대장, 검찰과 법관의 자리도 개방해보자. 무자격경찰서장선출보직제, 무자격연대장선출보직제, 무자격검찰보직제 참 현란하리만큼 아름다운 발상(?)아닌가.
아마도 이런 주장이 넘쳐나면 이 나라는 콩가루정부가 될 것이다. 아마도 정권이 바뀌면 정치 집단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과정에서 나누어 가질 자리가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 사실 장관이나 국회의원은 과거의 자신의 전공이나 직업과는 상관없는 어떤 일이라도 한다. 아마도 이런 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전문성이 부족하고 항상 아마츄어 수준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진출한 사람이 승진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열중해야 하고, 일정한 보직을 맡아서 중간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교장, 교감, 그리고 동료교사들의 인정을 받아야 승진할 수 있다. 고작 전체 교원의 3%정도가 승진한다는 통계를 본 일이 있다. 이와 같이 바늘 구멍 같은 승진구조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교사들은 이런 경쟁도 하지 말고 그냥 가르치는 일에나 열중하라는 뜻인가. 성취 욕구를 빼앗는 것은 조직의 생명을 자르는 일과 같다. 가르치는 일은 교원에게 전담시키고 관리직은 아무에게나 시키겠다는 발상은 아무리 보아도 설득력이 없는 전형적인 밀어붙이기식의 폭력이다.
누구에게나 꿈을 주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꿈을 꺾어 버리는 정책은 정치가 아니다. 현장교원으로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열중한 교사가 경륜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 관리직으로 진출하는 꿈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시스템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일 아닌가. 그런데 승진 길을 막아 놓는 제도를 만들어 교원을 왜소화하려는 정책은 교원이 미워서인가, 아니면 교육이 별 것 아니어서인가.
“무자격교장공모제”는 학교현장을 난장판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교장은 소위 아무나 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가르치는 일보다 사회적 활동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회활동 또는 정치활동을 통하여 바탕을 마련해 놓으면 교장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교육에 대한 전문적 마인드도, 전문성도, 연구도 경력도 필요 없다. 이런 것을 준비하는 시간에 학연 지연을 잘 관리하고 특정 교원단체와 줄을 대고 있다가 결정적 순간에 로비만 잘 하면 누구나 교장이 될 수 있는 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교육적이다.
교장을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인식은 참으로 위험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만큼 교장에 대한 권위나 상징성 또한 별 것 아닌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오히려 교장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경영 능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경주되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엉뚱한 일로 교육력을 소진하는 일을 말았으면 한다.
송일섭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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