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의 바른 길 (3) 바뀌는 제도들

2007.04.26 22:35:00

교육이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인 적성을 최대한 살려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하게 하려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을 인간답게 길러내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면 교육정책을 입안할 때에 당연히 이 교육의 목표가 정책의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의 교육정책은 대체적으로 그때그때의 사회형편이나 여론의 향배에 따라 움직이는 미봉책이나 아니면 정권을 담당한 자의 업적을 자랑하기 위한, 소위 말하는 경제논리에 입각한 전시적인 정책이 대부분인 것 같다.

교원평가를 예로 들어보자.

교원평가를 하면 교사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좀 더 자기 계발에 힘 쓸 것이고 교사의 질이 나아지면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행하여 아이들의 학력이 신장될 것이다. 단지 이것은 교사로 하여금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 스스로 채우기 위한 노력을 할 자료로만 쓰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책입안 교육부 관리들의 말이고 그것은 물론이고 평가에 기준 미달이면 책임을 물어 불이익 및 퇴출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그것을 주장하는 학부모 단체의 변이다.

아이들의 학력 신장 조건은 여러 가지 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교사의 가르치려는 열성과 양질의 방법 그리고 배우려는 아이들의 필요성과 능력이 아닐까싶다. 그 외 환경이나 시설 또한 무시할 수 없을 터이지만 앞서 말한 두 가지의 조건을 두고 생각해보자.

우리의 조상들에게는 아이들과 선생의 관계가 그냥 지식의 전달 관계가 아니고 부모 자식의 관계에 버금가는 것이 우리의 정서이었기에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가 자리 잡았었고 아이들은 스승을 우러러 존경하고 스승은 아이들을 자기 몸처럼 아끼고 사랑했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다주어 청출어람의 경지를 이룬 제자에게 스승에 대한 보은이라고 고마워했었다.

좋은 스승의 문하에 들 수 있은 것을 자랑하며 기뻐했고 좋은 제자를 길러 이 세상의 동량으로 내 놓을 수 있은 스승 역시 군자 삼락중의 하나를 이루었다고 기뻐한 것이리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꼭 학문만이 아니고 그것이 세상에서 하찮게 여기는 작은 기술이나 무예일지라도 예외 없이 스승은 제자에게 인간의 바탕을 먼저 가르친 후에 자신의 학문이나 재예를 가르친 것을 보면 교육의 길에 선 사람은 지금도 배워야 될 일이다.

아이를 가장 잘 가르치는 선생이란 아이에게 충분한 동기부여를 해서 아이 스스로 배움의 목표를 알고 익히려는 의지를 강하게 가지게 한 후 뒤에서 지켜보며 받치고 밀어주는 조력자를 말한다.

대부분의 교사는 아이가 자발적인 창의력을 발휘해서 자신과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능력을 함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돌보기를 원한다.

사람이 살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인생을 누리며 산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해석과 실천의 차이이지 지식의 양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로 조상들은 사람 됨됨이를 먼저 살피고 가르치면서 살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스승이 몸으로 가르치는 것이지 학문만의 전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몸으로 실천하며 가르치는 바탕위에 스스로의 필요와 욕구가 훌륭한 인간을 태어나게 한다.

이렇게 실천해 보이면서 가르치는 스승의 자질과 능력은 평가를 한다고 이루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제자를 그런 사람으로 가르치고 싶어 하는 스승 된 자의 욕심과 부단한 자기연찬에다 주위 사람들과 배우는 제자에게서 오는 존경과 신뢰가 주는 명예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처럼 교사들에게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아무런 기준도 없이 교육외적인 문제나 지엽적인 항목들로 평가한다면 결국은 모든 교사가 거기에 응하게 되어 단편적인 지식의 전달은 가능하게 될는지 모르지만 인간교육에는 실패하고 말 것이다.

한 인간에게 인간으로 바르게 살 수 있도록 가르쳤는지 아닌지를 판별하려면 적어도 한 세대인 30년 정도가 지나야 한다고들 한다. 그럼 지금처럼 교육이 흘러간다면 30년 쯤 후에 보이는 이 사회의 모습은 지금보다 더 삭막할 것이라는 것은 30년 전 지금보다 가난 했지만 지금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았던 우리 사회를 돌이켜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교사집단을 평가하여 문책과 퇴출의 자료로 삼기를 원하는 일부 학부모단체를 위시한 관료나 학자들은 연합고사 부활이나 대학입학고사 따위가 지금의 평준화 틀을 깨어 아이들을 무한 경쟁의 나락으로 밀어 넣는다고 결사적인 반대를 한다. 그런 그들이 교원평가를 빙자하여 교사들을 무한경쟁의 장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다. 지엽적인 지식의 전수 때문에 교사들이 학부모와 제자들에게까지 눈치를 보아야 하며 동료들끼리도 경쟁의 상대로 살아야 하는 교육현장을 만들어서 얻는 이익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인간교육을 이룰 수 없다는 것뿐이다.

그런 경쟁에 빠져 허덕이는 교사들을 아이들이 과연 어떻게 볼 것이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아이들은 경쟁사회에 던져지면 안 되고 그 아이들을 따뜻한 가슴의 사람으로 길러야 할 교사들은 교육외적인 능력, 혹은 지식전달 기술 등으로 짜여진 평가로 경쟁의 와류에서 허덕인다면 이 것이 옳은 교육개혁인가?

지금이라도 교사를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회풍토 조성에 힘을 모아야 할 일이다. 사회에 이런 노력이 시작된다면 요구하지 않아도 교사들은 긍지를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며 사회의 존경에 걸 맞는 교사가 되기 위한 자정의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때 교원평가를 논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서에 맞는 교육개혁에 힘을 쏟아야 한다.
문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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