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근무하다보니 두 곳의 학교에서 축구부를 맡았었다. 열심히 지도했고, 나름대로 실적도 좋았지만 훌륭한 선수를 키우지 못했다.
그때는 더 젊었었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작은 것까지 일일이 참견할 만큼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다. 축구경기가 열리는 곳을 빼놓지 않고 찾아다닌 것도 그때다.
여행에 맛을 들이고, 휴일을 이용해 전국을 떠돌기 시작하면서 경기장과의 인연도 멀어졌다. 축구경기장을 찾은 기억도 쉽게 떠오르지 않을 만큼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오마이뉴스> 덕분에 우연찮게 축구경기장을 다시 찾게 되었다. 입장권의 값을 떠나 옛 추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니 나에게는 횡재였다.
시민기자를 대상으로 했던 '2007 피스컵 코리아 초대권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그것도 지난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은 영국의 볼튼 원더러스와 프랑스의 올림피크 리옹의 '2007 피스컵 결승전'의 경기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2002 한일월드컵의 개막식이 열린 경기장이면서 국가대표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화면으로 보는 곳이다. 지방에 살다보니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직접 찾는 것이 처음이라 더 마음이 들떴을 것이다.
'피스컵 2007' 홈페이지를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참가팀, 스타플레이어, 경기결과 등 피스컵에 대한 것을 알아냈다. 그중에서 아래와 같은 대회의 이념이 마음에 들었다.
세계 모든 국가들이 이념과 사상을 극복하고 서로의 팀을 응원하고 상대의 팀을 격려하는 평화의 제전입니다. 피부색과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세계인이 축구라는 평화의 스포츠로 하나되길 염원합니다.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표스포츠 '축구'를 통하여 지역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세계인의 평등과 평화를 추구합니다.
대회당일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아내와 함께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자주 여행길에 나서면서 전국을 제 집처럼 다닌다는 소리를 듣건만 서울에만 가면 그야말로 촌놈이 된다.
월드컵경기장으로 나간다는 게 이정표를 잘못 해석해 10여m 전에 미리 빠지고 보니 아뿔싸 성산대교로 가는 길이다. 경기장을 옆에 두고 강을 건너가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차를 길옆에 세우자 지나가던 차가 경적을 울린다.
인생살이는 참 묘하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경적을 울리며 귀찮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쁜 시간을 쪼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과 같은 하늘 아래서 숨쉬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것을 도움 받은 사람들은 안다.
지나가던 택시 한대가 내차 옆에 선다. 자초지종을 듣자 여기서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렵다며 자기 차를 따라오란다. 그리고는 성산대교를 건너는 지점에 차를 세운 후 유턴해 다시 성산대교를 건너가 월드컵 경기장을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줬다.
당시는 정신이 없어 인사도 못하고 떠났지만 이런 분들이 서울시를 대표하는 진정한 홍보대사다. 마땅히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21일 오후 3시 20분경 서울 33 사 7632호 택시를 운전했던 기사님을 칭찬하는 글을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올렸다.
경기장 밖에서는 목표지점에 골을 차 넣고, 미녀들과 사진을 촬영하는 축구토토 체험 이벤트가 실시되고 있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보조경기장에서는 유치원에 다닐만한 나이의 꿈나무들이 열심히 축구공을 차고 있다.
시작시간을 한 시간이나 남겨놓고 경기장에 입장했더니 빈자리가 많다. 양 팀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부지런히 몸을 풀고 있다. 직접 서울월드컵 경기장에 입장해 의자에 앉아보니 경기장의 웅장함과 건축기술의 우수성이 실감났다.
시작시간이 가까워오면서 경기장으로 입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단위의 입장객이 많다. 양 팀의 깃발과 선수들이 입장하고 기념촬영을 한다.
심판의 호각소리로 정확히 5시 전반전이 시작되었다. 피파에서도 공인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2007 피스컵 코리아' 결승전은 전후반 내내 리옹이 경기를 주도했다. 후반 40분 킴 칼스트롬이 결승골을 터뜨린 리옹이 결국 1-0으로 승리했다.
비록 1골밖에 골을 터뜨리지 못했지만 '아트사커' 리옹과 '축구종가' 볼튼은 명품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관중들은 질서정연한 응원문화로 우리 국민의 축구사랑을 보여줬다.
이날 5만여 명의 관중들이 양 팀의 서포터즈들과 함께 조직적인 응원을 즐겼는데 경기에서는 패했지만 조직적이고 열광적으로 응원을 펼친 볼튼의 응원단이 관중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리옹은 세 번째 도전 만에 첫 우승이니 그만큼 감격이 컸을 것이다. 시상식 전 리옹의 선수들은 응원단 앞으로 달려가 샴페인을 터뜨리며 기쁨을 함께 했다.
어느 경기든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고 끝나고 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 게 운동경기다. 이날 볼튼의 선수들은 비록 경기에서는 패했지만 관중들에게 멋진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박수를 받았다.
경기가 끝난 후 버린 쓰레기를 스스로 정리하는 멋진 모습을 보며 국민의식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물이든 PT병을 앞좌석으로 던지는 젊은이들이나 시상식 전에 자리를 뜨는 관중들의 태도는 옥의 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