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있어준다면

2007.08.23 15:51:00

갑자기 거동을 할 수 없게 된 어머니가 청주 효성병원에 입원한 날이 7월 18일이다. 그때부터 절망에서 희망으로, 희망에서 절망으로 희비가 교차되는 나날이었다.

MRI 촬영으로 척추관협착증이라는 병명을 알아내고, 걸을 수 있다는 희망에 어머니가 수술을 원하고, 관절염약 남용으로 생기는 부작용 때문에 마취과에서 수술을 반대하고, 몸 상태가 좋을 때를 기다려 수술을 했으나 회복이 되지 않아 사경을 헤매고, 기적적으로 소생을 해 일반병실에서 생활하게 되고, 문병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걸을 수 있다는 꿈에 부풀고, 폐렴 등 합병증이 발생해 다시 중환자실로 옮기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어머니에게 힘이 되는 일이라면 지푸라기라도 짚고 싶은 심정이었다. 중환자실에서의 아픈 추억을 자주 말씀하셨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머니에게는 소생해 다시 일반병실로 갈 수 있다는 희망마저 욕심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그런 희망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를 중환자실로 모시고 하루만인 8월 21일에는 우연찮게 만감이 교차하는 일들을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더 슬프고, 더 안타까운 날이었다.

아침 면회시간에 어머니는 자꾸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헛소리를 하시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했다. 늘 그랬듯이 면회를 마치고 가는 길에 라디오를 틀었더니 양희은씨의 '당신만 있어준다면'이 흘러나왔다.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몸이 굳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마침 mbc 라디오의 '여성시대' 시간이었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들이 어머니와 내가 겪고 있는, 그렇게도 우리 가족들이 소망하고 있는 이야기였다.

세상 부귀영화도 세상 돈과 명예도/ 당신, 당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세상 다 준다 해도 세상 영원타 해도/ 당신, 당신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죠...(중략)...우리 아프지 말아요 먼저 가지 말아요/ 이대로도 좋아요 아무 바람 없어요/ 당신만 있어 준다면/ 당신, 당신, 나의 사람/ 당신만 있어준다면

수시로 변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다른 때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일들마저 새롭게 보일 만큼 생각이 깊어지고 여려졌다. 양희은, 강석우씨가 읽어주는 사연들이 더 가슴으로 다가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던 날이다.

병원에서 어머니를 간병하다보니 건강이 최고다. 노랫말처럼 세상의 부귀영화, 돈, 명예 다 필요가 없다. 몸이 아프거나 함께 할 사람이 없는데 그런 것들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절망의 낭떠러지 끝에 서 있어도 어머니만 내 곁에 있어준다면 바랄 게 없는데…. '당신만 있어준다면'을 수없이 외쳐보지만 내가 지금 어머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더 가슴이 찢어진다.

저녁나절의 하늘은 왜 그리도 아름답던지…. 저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어머니와 같이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메어졌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일찍 혼자되어 고생만 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세상살이 참 불공평하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지금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현실이라는 것과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우리 어머니, 원래 의지가 강한 분이다. 그래서 중환자실에 홀로 누워계셔도 절망하지 않는다.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왔던 친척들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쉽게 떠나지 않으실 거라고 믿는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간병했던 나도 어머니가 훌훌 털고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당신만 있어준다면'의 노랫말을 다시 떠올리며 '먼저 가지 말아요 이대로도 좋아요 아무 바람 없어요 당신만 있어 준다면'을 조용히 읊조려 본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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