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에 대한 斷想

2007.09.26 22:56:00


학교에서 1년 반 동안 기른 蘭이 집에 온 지 한 달만에 죽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잘 자라더니 어느 날 보니 잎 밑동이 썩어 있다. 손으로 잎을 만지니 저절로 줄기가 떨어진다.

왜 죽었을까? 원인을 분석하니 애꿎게 아내에게 화살이 간다. 나와 아내는 난에 물주는 방법이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물주는 횟수가 다르다. 나는 학교에서 蘭 개개의 생태를 유심히 관찰해 '이제 물을 주어야 하는구나' 할 때 수돗가로 가지고 가 물을 흠뻑 준다. 뿌리가 물을 충분히 머금을 때까지. 모든 난에 일제히 물을 주는 것이 아니다. 蘭마다 물주는 시기가 다르다.

거기에 비해 아내의 난 물주기는 규칙적이다. 2주일에 한 번씩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물 준 것도 상관하지 않고 물주기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물주기에 게으른 남편을 탓하며 식물을 사랑하는 아내의 물주기가 결국 난 하나를 죽게 만든 것이다. 

난에 정기적으로 물주는 사람이 관심과 사랑이 많은 것 같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그게 식물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진정 사랑은 아니다. 의무감에 물주기를 하여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결국 蘭을 관리하는 사람이 2명이 된 사실이 난을 죽게 만든 것이다.

교사 시절, 선배 교감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난은 게으른 사람이 키워야 해요. 부지런한 사람은 물을 너무 자주 주어 뿌리를 썩게 만들죠. 또 난은 거칠게 다루어야 꽃을 피웁니다. 환경을 좋게 해서는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교무실에서 겨울철을 지내고 꽃을 피워낸 책상 위 난을 보고 하신 말씀이다. 그 말씀이 '난 키우기 지침'이 되었을까? 학교에서는 물주기보다 관찰하기가 일과다. 잎의 먼지를 걸레로 닦아내면서 살펴본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난 주인외에 물주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것이 오히려 난에게는 좋은 것이다. 그러던 난이 아파트에 오자 2명의 주인을 만난 것이다. 그러다가 그만 사랑이 넘쳐 생명을 다하게 된 것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과잉보호, 과잉사랑이 자녀교육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를 생각해 본다. 때론 자녀가 스스로 하도록, 스스로 서도록 지켜 보아야 하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간섭하고 도와준다. 그것이 부모에 대한 의타심으로 발전한다. 자립심이 길러지기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그러나 부모는 그것을 모른다. 자기가 하는 행동이 자식을 위한 것으로 착각한다.

蘭이 죽은 원인에는 부부간 대화의 부족도 있다. 물주기 방법도 의논하고, 그 동안 학교에서 어떻게 키웠나를 알려주었어야 하는데 그런  대화가 없었다. 또 하나. 부부의 역할 분담이 부족했다. 난 키우기는 누구라고 정해야 하는데 상대방이 알아서 키울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부부간에는 무조건적인 신뢰보다는 정보 공유를 통한 신뢰가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蘭 키우기, 그냥 건성으로는 안 된다. 보기 좋게 물뿌리고 규칙적으로 물을 주면 되는 것이 아니다. 개개의 蘭을 살펴보고 그에 맞게 처방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식물도 이러할진대 인간을 다루는 교육, 그냥 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학생 개개인의 자질과 특성, 여건을 고려하여 교육에 임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이 어렵고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개개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물주기, 그것은 진정 교육이 아니다. 난을 바라보며 새삼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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