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묵묵함? 엄함? 아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 사람? 어느 하나로 단정할 수 없다. 자식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사람마다 환경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아직은 아버지의 모습이 자식들에게 안길 수 있는 존재로 다가오기는 쉽지 않다.
물론 요즘은 아버지의 모습도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머니만큼은 친근한 존재는 아닌 것 같다.
며칠 전 학부모와의 진로 설명회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섯 명의 어머니들과 상담을 하고 있는 동안 그 어머니의 아이들이 복도에 서서 엄마를 기다렸다. 가끔 창문을 열어보며 눈을 마주치곤 미소를 주기받기도 했다. 상담 중에 웬 불경한 행동이냐고 하겠지만 내겐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한 시간 삼십 분 동안 어머니들과 이야기가 끝나고 복도를 나오자 아이들은 일제히 자기 엄마를 찾아 팔짱을 꼈다. 어떤 아이는 등에서 껴안고 어린양을 부린다. 그 중엔 ‘우리 엄마 별로 안 좋아요.’ 하고 말을 했던 아이도 있었다. 암튼 열두 명의 모녀가 나란히 팔짱을 끼고 저녁 어스름 속으로 걸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에 나 또한 잠시나마 행복했었다.
이틀 후, 또 몇몇 아버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엔 아이가 다섯 살 때 이혼한 아버지도 있었다. 그 아버지는 자신의 딸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헤어진 이유가 무언지 모르지만 그 아버지는 말했다. 일 때문에 늘 밖으로만 다녀 아이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한 게 안타깝고 미안하다고.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지만 다행히 그 아이는 늘 밝았다.
상담이 끝나고 그 아버지는 딸아이와 팔짱을 끼고 집에 간 게 아니라 일하러 간다며 자리를 떴다. 어머니와 딸은 팔짱을 끼고 정담을 나누며 갔지만 아버지와 딸은 따로 떨어져서 각자 갈 길로 간 것이다. 다는 아니지만 어쩌면 이게 요즘 자식과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강숙인의 <아빠하고 나하고>도 이런 아빠의 모습이 나타난다. 초등학교 6학년인 이야기의 주인공 지헌이도 여섯 살 때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했다. 그 뒤로 내내 엄마와 함께 살았다. 가끔 아빠와 만나기도 했지만 서먹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물론 이혼 뒤에도 엄마와 아빠는 가끔 만나기도 하고 지헌이 때문에 연락도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방송국 프로듀서인 엄마는 엄마로서의 인생을 열심히 살고, 아빠 또한 열심히 회사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지헌이게 충격적인 말을 한다. 엄마의 꿈인 연극연출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2년 동안 공부하러 가게 됐다고 한 것이다. 지헌이 아빠에게도 말을 했고 유학 간 2년 동안 지헌이를 맡아 함께 살기로 했다고 말도 한다. 그러면서 ‘아빠도 널 사랑하셔. 잘 해주실 거야.’ 하며 위로를 한다. 지헌이는 그런 엄마에게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이렇게 중얼거린다.
‘사랑한다고? 다 거짓말이야. 사랑하지 않으니까 아빠는 엄마랑 이혼한 거잖아. 엄마도 나보다 유학이 더 중요하니까 날 버리고 떠나는 거고.’
늘 바른 소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헌인 언제나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다. 엄마의 꿈을 알기 때문이다. 또 엄마를 속상해하기 싫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빠하곤 살기 싫다는 생각을 한다. 거기에 아빠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긴 걸 알고 더 싫어한다.
그러나 엄마는 아빠에게 지헌이를 맡기고 미국으로 떠난다. 떠나기 전 아빠에게 꼬리가 아홉 달린 아줌마(지헌이는 아빠의 여자를 그렇게 부른다)가 생겼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이제 이혼한 사이니까.
엄마의 말에 지헌이는 부모가 이혼한다는 게 참으로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엄마와 잘 지내고 이따금 아빠와도 만나면 필요한 것들을 많이 사주기 때문에 크게 불편한 것이 없었다고 생각했던 지헌이다. 그런데 막상 엄마가 떠나면서 그렇게 말하지 이혼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 것이다.
엄마가 떠난 후 지헌이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방황한다. 아빠는 그런 지헌이에게 좀 더 살갑게 대하며 가깝게 지내려 노력하지만 지헌이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여전히 지헌이에게 아빠란 존재는 가깝고도 먼 사이였다.
그렇지만 아빠는 아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꿈의 계곡으로 여행을 준비한다. 오직 아들인 지헌이를 위해서다.
꿈의 계곡은 아빠의 새 아줌마가 살았던 고향에 있는 계곡이름이다. 그곳에 아빠 친구의 딸인 다흰이와 꼬리가 아홉 달렸다고 생각하는 아줌마도 동행을 하게 됐다. 지헌이에게 이 세 사람은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존재들이다.
꿈의 계곡에서 네 사람은 천막을 치고 생활한다. 낮엔 물놀이도 하고 가끔 숲속 탐사도 한다. 밤엔 함께 모여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게임을 해 진 팀이 식사당번이 되기도 한다.
그러는 중에 미운 아이라고 생각했던 다흰이에게 마음이 끌려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빠의 새로운 모습에 마음이 든든해지기도 한다. 또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 아줌마에 대한 미운 마음도 점차 엷어짐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지헌이는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아빠 따라서 캠핑 오기를 잘했어. 정말 잘했어.’
이 동화는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사랑을 찾아가는 한 소년의 성장이야기다. 엄마 아빠와 이혼이라는 아픔 속에서 한 아이가 어떻게 그 아픔을 극복하는 가를 보여주고 있다. 또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허면 작가는 이 이야길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는 빛깔이 다른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같은 부모라도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은 다르다. 따라서 그 빛깔도, 빛깔이 퍼져나가는 방법도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한 아버지로서 당신은 어떤 빛깔의 사랑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