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군 연풍은 괴산군 칠성면ㆍ장연면, 충주시 수안보면, 경북 문경시 문경읍ㆍ마성면ㆍ가은읍에 둘러싸여 있고 주변에 조령산, 백화산, 희양산, 구왕봉 등이 솟아있어 평지가 협소한 산간지역이다.
연풍은 험준한 산지이지만 이화령을 넘는 3번국도가 경유하고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며 문경ㆍ괴산ㆍ충주방면은 물론 북부와 남부지방으로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또 양잠, 사과, 고추, 곶감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연풍에 가면 꼭 들려야 할 곳이 연풍초등학교다. 운동장의 한 편에 있는 연풍동헌(延豊東軒)과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천주교 성지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충북유형문화재 제162호인 연풍동헌은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연풍동헌은 1766년(영조 42) 현감 이덕부가 이전의 건물 남쪽에 새로 지은 풍락헌(豊樂軒)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목조 기와집이다.
연풍동헌은 조선시대 3대화가 중 한명인 단원 김홍도가 1792부터 3년이 넘게 현감을 지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1972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연풍동헌은 1912년에 개교한 연풍보통학교가 1920년부터 교사(校舍)로 사용하면서 ‘흥영관(興英館)’이란 편액을 달았고, 1965년에 중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새도 쉬어 간다는 문경새재 서쪽 기슭의 고지에 자리 잡고 있는 연풍은 종교의 탄압을 피해 은신처를 찾는 순교자들에게 지리적으로 좋은 피난처였다. 그래서 일찍부터 신도촌이 형성되었다.
연풍 천주교 성지는 1801년(순조 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가톨릭 신도 추순옥ㆍ이윤일ㆍ김병숙ㆍ김말당ㆍ김마루 등이 처형당한 자리로 이들은 1791년(정조 15) 신해교난(辛亥敎難)을 맞아 연풍지역에서 은거하던 중이었다. 성지의 터는 조선시대 향청 건물이 있던 곳인데 이전에는 헌병주재소, 경찰지서 등으로 사용된 적도 있다.
이곳에서 논과 집터 정리 작업을 하면서 박해 때 순교자들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된 형구돌이 3개 발견되었다. 지금 절두산 성지에서 전시되고 있는 형구돌이 그중 하나다. 형구돌은 병인박해(1866년) 때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순교자들을 소리 없이 죽이기 위해 만든 것으로 순교자의 목에 밧줄을 걸어 앞 구멍에 놓이게 하고 반대편 구멍에서 줄을 잡아 당겨 죽이던 잔혹한 형구이다.
한국천주교 103성인에 속하며 1968년에 충남 보령 오천의 갈매못성지에서 순교한 황석두(黃錫斗)의 고향이 연풍으로 드러나며 성지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1982년 황석두의 유해를 문중의 산에서 이곳으로 이장해왔다.
성지 내에는 옛날 지방수령을 보좌하던 자문기관인 연풍향청(충북문화재자료 13호) 건물과 높이 8.5m의 십자가상, 황석두의 입상과 묘가 있다. 십자가상 왼쪽에는 갈매못성지에서 순교한 5인의 성인상과 순교현양비(殉敎顯楊碑)가 서있고, 문 앞에는 처형석을 전시하고 한국인 최초의 주교인 노기남 대주교의 동상을 세웠다.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연풍성지 가까운 곳에 원풍리마애불좌상(보물 제97호), 입석리 소나무(천연기념물 제383호), 연풍향교(충북유형문화재 제103호), 수옥폭포, 조령 삼관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