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어깨 다독이는 학교와 사회에 목표를 두었으면

2008.04.30 15:28:00

요즘 우리 교육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선 연하여 새로운 것들을 쏟아내는데 관련단체나 시민단체들의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막 쏟아내고 있다.

내놓은 정책들의 면면을 보면 모든 초점이 경제성과 효율성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정책을 입안하는 관료들의 눈엔 아이들의 성적만 보일뿐 아이들의 마음은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만 살리고 돈만 벌게 하면 모든 정책이 성공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아이들도 높은 성적을 올리기만 하면 모든 교육정책은 성공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돈과 성적만 보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그저 답답하고 답답하여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교실 속에 있는 아이들은 입버릇처럼 외쳐댄다. 벌레가 아닌 사람이길 원한다고. 쉬는 날 쉬고 싶고 공부하는 날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인문계 학생들에게 토요일은 사라진지 오래다. 평일엔 지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깜깜한 교문을 공부의 멍에를 메고 나선다.

교문을 나선다고 그들이 쉴 곳은 없다. 다시 학원을 가거나 독서실로 향한다. 집에 들어와 잠드는 시간은 빨라야 새벽 한 시다. 잠 잘 시간이 없다. 쉴 시간을 주지 않는다. 어쩌다 잠을 자거나 쉬고 있으면 뭔가 쫒기 듯이 불안하다. 자신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다. 학부모도 똑같은 증세를 보인다.

이런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 교육정책을 담당한다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매질을 해댄다. 너희들이 살길은 성적을 올리는 길이라고. 우리나라가 살길은 성적을 높여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또 학교는 어떤가. 겉으로 드러나는 성적표를 잘 맡기 위해 아이들을 닦달한다.

다른 학교와 비교하여 높으면 잘 가르쳤다 자위한다. 성적이 낮으면 열등학교가 되고 열등 교사가 된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아이들은 허걱대며 머리를 싸매지만 이해하기 보단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엔 어떤 주체의식이나 자율의식은 없다. 그 어떤 것에도 학습의 주체자인 아이들은 없다.

또, 수없이 쏟아내는 정책들 중에서 인간으로서 따스한 품성을 지니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마음을 배우고 가르치라는 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저 싸워서 이기라고 한다. 싸워서 이겨야 우수반에 들어갈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열등반에 들어가 열등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은연중에 내몰고 있다.

그러면서 학교 자율에 맡긴다고 말한다. 현재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일련의 정책들이 숱한 문제점을 표출한다면 어쩌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우리는 각 교육청과 학교 자율에 맡겼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말이다.

우리는 지금 극단의 성과주의에 빠지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좋은 성과만 올리면 된다는 생각. 이러한 생각이 이 나라를 이끌고 갈 선장이 하고 있으니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선장의 비유에 맞추기 위해 여러 일들을 고안해서 쏟아낸다. 여기에 어떤 도덕적 가치도 도외시된다. 또한 아이들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성과와 성적만 많이 올리면 성공이라고 자축하려 한다. 성과와 좋은 성적이 보기 좋은 결과물은 될지언정 결코 성공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데 말이다.

우리는 경쟁과 성과라는 전쟁의 그물 속에서 갇혀가고 있다. 사회는 사회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경쟁의 줄을 세워놓고 살아남으려면 상대를 누르고 이기라고 재촉하고 있다. 그리곤 우리 사회를, 우리 아이들을 모든 경쟁의 링 위에 올려놓고 서로 치고 받도록 종을 쳐놓고선 자율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어떤 책에선가 본 글이 생각난다. 사법고시와 외무고시를 동시에 합격한 친구에게 한 기자가 인터뷰를 하러 갔더니 그냥 울더라는 것이다. 소감을 묻는데 소감은 말하지 않고 그저 짜증내며 울더라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하나도 힘들다는 두 개의 고시를 합격한 그 친구는 자신을 다루는 공부는 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도 배우지 않은 것이다. 그저 좋은 성적만 올리면 모든 게 이해되는 우리 교육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 읽으면서도 씁쓸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정부의 학교 자율화조치로 학교도 이제 학원화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정책이 특정 소수를 위한 정책이며 이로 인해 지방의 교육은 모두 죽을 거라며 비판하고 있다. 이는 학교라는 공간을 학원에 개방한다는 그 이면엔 성적지상주의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었다. 이젠 화석처럼 돼버린 말이지만 그만큼 교육의 중요성과 장기성을 두고 나온 말일 것이다. 또 신중하게 계획을 세우고 정밀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나오는 정책들을 보면 공교육의 포기를 선언하는 것들이 아닌지 하는 염려를 하게 된다.

이젠 우리가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이다. 타인을 밞고 자신만의 성공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있는 자나 없는 자나 함께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한다면 세상은 좀 더 살만나지 않을까 싶다. 가끔 조금은 손해 볼지라도 함께 어깨 다독이는 학교를 만들고 사회를 만드는 것에 교육의 목표를 둔다면 서로 경쟁하면서도 지금보다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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