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아빠니가 당연히 사랑스럽다

2008.05.29 00:19:00


초록의 풀 냄새가 교실창문을 타고 싱그러운 모습으로 뚜벅뚜벅 걸어온다. 5월의 냄새이다. 5월의 냄새, 5월은 신록의 향기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맑디맑은 미소도 있고, 세파에 주름살 깊게 패인 아버지 어머니의 자식들에 대한 사랑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부모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을 잊은 채 살아간다. 늘 관심을 받고 있으면서도 관심을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기처럼 말이다.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종요로운 것이 공기(산소)이면서도 우리는 그 공기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항상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부모는 공기와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이들(학생)과 이야길 나누다보면 의외로 부모에 대한 안 좋은 감정들을 드러내는 아이들이 많음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엄마는 나 싫어해요.’ ‘우리 아빠하고 이야기 한 적이 거의 없어요. 혼내기만 해요.’

엄마나 아빠가 사랑스런 이유 20가지를 써보자고 할 때도 아이들 몇몇은 노골적으로 투덜대기도 했다. 왜 엉뚱한 짓을 하려고 하여 우리들을 괴롭히려고 하느냐는 의미였다. 그런 아이들에게 한 번 써보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설득했다. 그리고 방법을 예를 들어 알려주었다.

먼저 <엄마가 사랑스런 이유 20가지>로 제목을 정하고 스무 가지를 쓸 것. 다음엔 엄마나 아빠에게 편지처럼 드리지 말고 꼭 읽어 드릴 것. 세 번짼 부모님의 소감이나 생각을 자필로 받아올 것. 그리고 마지막엔 읽어드리고 부모님의 소감을 받은 후의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간단히 적어올 것.

물론 엄마나 아빠가 안 계시는 경우를 생각하여 가족 중 한 사람을 정해서 쓰도록 이야기해 주었더니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들과 투덜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하다.

“혹시 엄마나 아빠 한 사람에게 써 드리면 질투할지 모르니 일단 엄마나 아빠를 너희 방으로 안내해. 그런 다음 음악을 쫘~악 깔고 글을 읽어드려 보렴. 분위기 나겠지.”

그러자 여기저기서 ‘부끄러워요’ ‘창피하게 어떻게 그래요.’ ‘멀리 떨어져 함께 살지 않으면 어떡해요.’ 하는 등의 질문이 쏟아진다. 떨어져 사는 경우엔 전화를 통해 읽어드리고 부모님의 소감을 들은 다음 적게 했다.

가장 많이 나온 말, 우리 엄마니까, 아빠니까 사랑스럽다



그럼 딸들이 바라보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한 엄마 아빠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전혀 새로운 것이 없는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아빠의 코고는 소리, 엄마의 잠꼬대 하는 소리, 엄마의 뱃살과 주름살마저 사랑스럽다고 이야기한다. 몇몇 아이들이 쓴 글과 엄마의 소감을 간단히 살펴보자.

엄마의 사랑스러운 점 20가지
1.엄마의 주름진 웃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2.엄마의 오겹뱃살이 사랑스럽다.
3.엄마의 흰머리가 사랑스럽다.
4.엄마의 코고는 소리가 사랑스럽다.
5.엄마의 까칠한 발이 사랑스럽다.
6.엄마의 따뜻한 품이 사랑스럽다.
7.엄마의 시끄러운 잔소리가 사랑스럽다.
8.엄마의 질펀한 궁딩이가 사랑스럽다.
9.엄마가 빨래할 때 사랑스럽다.
10.엄만 늘 사랑스럽다.  …… 등등

엄마의 사랑스러운 점 20가지
1.날 태어나게 해줘서 사랑스럽다.
2.우리 엄마는 설거지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3.아빠랑 장난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4.엄마가 나한테 시비거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5.엄마의 삐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6.엄마는 아파도 티 안내면서 자식은 아프지 말라며 기도하시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7.엄마의 춤추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8.야단치고 미안하다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9.엄마가 ‘우리 딸~’ 하고 내 엉덩이 두드려줄 때 사랑스럽다.
10.하나밖에 없는 우리 엄마이기 때문에 사랑 스럽다. ……등등

딸들이 당신들을 사랑하는 이유를 듣고 난 엄마들의 반응은 고마움과 기특함과 감동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엄마에 대한 소중함이나 사랑을 생각지 않고 투정만 부렸다는 아이들도 이번 글을 쓰면서 그 사랑과 소중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엄마들의 소감>
“엄마는 싫고 버리고 싶은 것들까지 사랑스러워 해주는 딸이 너무 이쁘구나. 그것도 모르고 늘어나는 주름을 보며 우울해 하곤 했는데 … 딸! 너무 고마워. 그리고 너무 사랑해.”
“항상 철부지인줄 알았는데 엄마의 단점까지도 사랑스럽다 표현 해주는 우리 딸이 더욱 사랑스럽구나. 엄마가 감격 또 감격이다. *^^*”
“작년과 다른 이벤트에 우리 딸이 기특하고 감동스럽구나. 엄마는 20가지라도 고맙고 사랑한다.”
“우리 딸이 많이 컸구나. 엄마는 너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너무너무 사랑해 우리 딸.”


<아이들 생각>
“이걸 쓰면서 내가 엄마를 많이 사랑하는 걸 느꼈어요. 엄마의 가슴이 찡하다고 했을 때 눈물이 나오려고 했었는데…아빠랑 친하지 않는데 아빠한테도 써드려야겠어요.”
“우리 엄마가 우리 엄마라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딸이다.”
“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엄마가 흐뭇해하시고 감동받으신 거 보고 너무 기뻤다. 그런데 아빠가 삐지셨다.”
“늘 가까이 있어서 엄마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엄마라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엄마의 사랑스러움을 찾다보니 모든 게 소중하고 감사함을 느꼈다. 엄마,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그렇다면 아빠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빠가 사랑스런 이유보다 엄마가 사랑스런 이유를 적어왔고 들려주었다. 많은 아이들 중 아빠에 대해 쓴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평상시 아빠보단 엄마와 대화를 많이 나누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그 마음만은 엄마에 대한 것과 다를 바 없다. 한 아이의 글을 보자.

아빠가 사랑스런(좋은) 이유 20가지
1.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 아빠라는 게 좋다.
2. 어렸을 때 내가 미운 짓을 많이 했어도 잊어주시면서 사랑해주시는 아빠
3. 학교나 학원을 늦게 다닐 때 “딸 어디야?” 하고 문자한통이라도 보내주시는 아빠
4. 내가 하는 말을 지지해주고 믿어주시는 아빠
5. 친구처럼 장난도 치고 친근한 아빠
6. 집안 살림 어려워도 예쁘게 키워주시는 아빠
7. 짜증을 자주 내도 다 받아주시는 아빠
8. 시험성적 떨어졌을 때 성적이 무슨 상관이냐면서 다음에 잘 보라고 응원해주시는 아빠
9. 엄마가 해주지 못하는 것들을 채워주시는 아빠
10. 우리나라 100개라도 못 바꿀 정도로 좋은 아빠 … 등등

이 아이는 엄마 없이 아빠하고 사는 아이다. 늘 조용하지만 속이 꽉 찬 아이는 자신을 키워준 아빠를 우리나라 100개라도 못 바꾼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또 어떤 아이는 “난 아빠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마음속 머릿속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아빠의 모든 것이 가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때론 미운짓도 하는 딸에게서 ‘우리나라 100 개를 준다 해도 바꾸지 않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이 찡하지 않을까. 아빠들은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좋아 좋아 좋아요~ 정말 좋아요~. 우리 딸 너무 고맙고 사랑해요.”
“이야! 우리 집 막내딸이 아빠를 요렇게 이쁘게 봐주다니~~~감동!! 앞으로 50가지도 쉽게 채울 수 있게 아빠도 열심히 노력을 해야겠구나. 우리 딸 홧팅 이얍!!”

허면 아이들이 쓴 내용 중에서 가장 많이 쓴 것은 무얼까? 가슴 뭉클하게도 ‘우리 엄마니까, 우리 아빠니까, 날 태어나게 해줘서 그 자체가 사랑스럽다.’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아빠가 사랑스런 이유>를 쓰면서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깨닫고 느낀 것은 부모에 대한 새로운 감사와 사랑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떤 아이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엄마가 자신이 읽어주는 글을 듣고 눈물을 글썽였다며 말하기도 한다. 아빠와 사이가 어색했던 아이는 ‘아빠가 사랑스런 이유’를 써서 읽어드리자 아빠가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고 사이도 좋아졌다며 기뻐하기도 한다.

우리는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라는 이유라는 만으로 그 소중함과 고마움을 생각지 않고 지낸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들은 엄마가 아빠가 사랑스런 이유를 쓰면서 잔소리도 코고는 소리도 잠꼬대 같은 소리도 사랑스럽다고 이야기한다. 부모의 힘들어하는 모습까지 사랑스럽다고 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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