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2008.06.10 08:57:00

옅은 안개가 낀 평온한 아침이다. 이른 아침 아름다운 풍경을 쳐다보면서 조용하게 사무실에 앉아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행복인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우리나라 전역이 평화로 가득 찬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져보면서 엊그제의 들었던 이야기를 되새겨본다.

엊그제 중학생의 외손녀를 둔 어르신 한 분을 만나 외손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외손자가 크게 나쁜 짓을 한다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닌데 집에 와서는 자기 어머니를 아주 괴롭힌다는 것이다. 자기 엄마가 애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자녀교육에 대한 한계를 느끼면서 괴로워하고 고민하다 고민 끝에 '어머니가 자식에게 이길 것이 아니라 지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이니 애가 변해가더라는 아름다운 자녀교육 의 성공담이었다.

애의 하는 행동이 못마땅하니 어머니는 잔소리하고 바로 잡으려 하고, 잔소리를 듣는 아들은 어머니의 말에 순종하기는커녕 오히려 어머니에게 대들고 이러기를 반복하니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지쳐 자녀교육에 대해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고 애는 더욱 빗나가 집에만 들어오면 어머니에게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어머니를 못살게 한다는 것이었다.

애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애를 어떻게 해야 말을 들을까? 밤낮으로 고심하며 지혜를 구하는 가운데 얻은 해답은 다름 아니고 자기가 자식에게 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하는 행동이 천불이 나고 간을 뒤집어놓지만 이제부터 자식에게 져야 되겠다. 내가 이겨야 할 것이 아니고 자식에게 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덩치만 컸지 생각이 모자라는 애에게 어머니의 권위로 말로 타이르고 교육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비록 생각이 모자라고 행동이 미흡하지만 애에 대한 신뢰를 보내고 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애를 보배 다루듯 귀하게 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평소에 먼저 시비를 걸고 애를 훈계하고 하던 어머니가 일체 잔소리하지 않고 학교 잘 다녀오라고 하고 학교에 다녀오면 무슨 문제가 없었느냐고 묻기도 하고 문제 될 만한 것은 아예 문제 삼지 않고 따뜻하게 대하니 애가 이상하게 여겨 학교에 갔다 오면 자기가 먼저 어머니에게 시비를 걸고 싸우려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여전히 일체 싸우지 않고 자식에게 이기려고 하지 않고 지는 자세를 가졌다고 한다. 

속에 불을 지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잘 참고 늘 변함없이 따뜻하게 대우하고 관심을 가져주고 문제를 문제 삼지 않고 따뜻함과 사랑을 보내니 그 때부터 애가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어머니에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미워했던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고 어머니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게 되고 순종하게 되고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렇다. 자녀교육의 비결은 자녀에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다.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다. 자녀의 잘못을 들춰내고 그것을 문제 삼아 자꾸만 고치려고 하기보다 자녀의 잘못은 숨겨두고 잘하는 점을 들춰내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자녀를 자녀답게 대접하고, 자녀를 자녀답게 대우하고, 자녀를 자녀답게 인정하고, 자녀를 자녀답게 대해 주니 자녀는 몰라보게 마음을 열게 되고 어머니에게 다가와 품에 안긴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내가 어머니라고, 내가 부모라고, 내가 어른이라고 내 기준에 따라 내 생각대로 자녀를 짓누르며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나 못지않게 자녀도 똑똑하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중학생이 된, 다 큰 자녀에게 어머니는 이길 것이 없다. 말로도 안 되고 힘으로도 안 된다. 덩치로도 안 되고 그 무엇으로도 안 된다. 어머니의 권위로도, 자존심으로도 안 된다.

그러니 어머니의 권위 너무 내세우지 말고, 어머니의 자존심도 내세우지 말고, 어머니의 입힘을 과시하지 말고 오직 자식을 더욱 귀하게, 귀하게 여기면서 자세를 낮추고 권위도, 자존심도, 힘도 다 내려놓고 사랑으로 다가가는 것만이 자식에게 지는 생활이요, 그것이 곧 자식에게 이기는 길이 아닐까?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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