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하는 아이들, 내면엔 고민이 가득…

2008.06.12 10:10:00


“선생님, 죄송해요. 뵐 면목이 없어요.”

선아(가명)는 날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떨군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여기 왜 또 왔어. 다신 안 온다고 약속했잖아. 내가 너희들 땜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 없어.”
“죄송해요. 약속 어겨서….”

선아라는 아이는 2학년 때 우리 반 아이다. 2학년 때도 흡연 때문에 학생부에 불려가곤 했었다. 그러던 녀석이 3학년이 되어서도 같은 문제로 걸려 들어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또 화장실에서 흡연을 하다 적발되어 학생부실에 온 것이다.

선아는 착한 꾸러기다. 난 이 아이를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자꾸 흡연 때문에 학생부 출입이 잦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 달 전에도 적발되어 요즘 한의원에 의뢰하여 금연침을 맞고 있는 중이었다. 이때 나하고 약속한 게 있었다. 이번 기회에 담배를 피우지 않을 거고, 금연침 10회를 맞은 다음엔 밥을 함께 먹기로 했다. 기운이 빠진 녀석에게 힘을 보태주기 위해 저녁을 사주기로 한 것이다.

선생님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실망이에요

5월 초쯤이다. 무엇 때문인지 녀석은 혼나고 있었다. 그런 아이에게 나 또한 ‘너 자꾸 말썽 피울래.’ 하고 약간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었다. 그런지 이틀 후 녀석이 내게 사탕 하나와 쪽지 편지를 가져왔다. 이런 내용이다.

‘선생님은 몰라요. 내가 맨날 웃으니까 아무 고민도 없는 것 같죠. 저도 힘들어요. 진로 선택도 그렇구요. 엄만 당뇨가 심해져서 배에 인슐린을 꽂고 살아요. 집안 형편도 많이 안 좋아졌구요.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실망이에요.’

물론 뒤에 ‘그래도 선생님이 젤 좋아요’ 뭐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녀석의 편지를 읽곤 내가 너무 가벼웠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3학년이라면 녀석의 말처럼 진로선택 같은 여러 고민이 있을 터인데 그런 고민을 들어주거나 이야길 해보려는 생각은 안 하고 겉 행동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후 미안한 마음도 들어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진로문제, 엄마 아픈 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녀석이 웃다가 울다가 한다. 그리곤 해어질 땐 마음이 다 풀렸는지 ‘헤헤, 쌤 나중에 또 봐용.’ 하곤 손을 흔들고 가버린다.

흡연하는 아이들, 내면엔 고민이 가득…

중고생들의 흡연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근래에 초등학생들까지 흡연을 한다는 보도가 나오는 걸 보면 점차 연령이 내려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왜 아이들은 답배를 피울까? 남자 아이들이야 멋으로도 피우고 호기심에 피우는 경우가 많지만 여자아이들은 왜 피울까! 친구들과 어울려 호기심에 피우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들과 이야길 나누다 보면 일종의 고민과 불만 표출이 흡연이라는 형태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와 같은 어른들은 그걸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 자체가 문제가 있으니 흡연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문제아로 인식하고 윽박지르듯 끊으라고 한다. 헌데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끊으라고 해서 끊어지는 게 아님을 안다. 겉으론 안 피운 것 같지만 사람들 눈을 피해 다 피우고 있다. 몇 몇 아이들의 실례를 보자.

인정(가명)이는 담배라면 질색하는 아이다. 집에서 아빠가 담배를 피우면 건강에 해로운 걸 왜 피우냐며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 날 버스터미널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다 들켰다.

온 식구가 발칵 뒤집어졌다. 담배라면 질색을 하던 딸이 흡연을 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엄마는 너무 놀라 부들부들 손을 떨기까지 했다. 부모에게 실망을 준 아이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인정이라는 아이는 아직도 담배와 가까이 하고 있다.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에 한두 개비 피운다고 한다.

은초(가명)는 중학교 때부터 흡연을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흡연으로 인해 자주 적발되었다. 금연침을 맞고 몇 번의 굳은 약속을 했지만 공염불이다. 나아진 것이라면 학교에서 피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정이라는 아이는 평범한 가정의 아이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사를 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혼자 끙끙 앓다가 아이들과 어울려 흡연을 하게 된 경우다. 조금의 의지가 있으면 끊을 만도한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얼굴을 볼 때마다 절대 안 피운다면서 정색을 하지만 남몰래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은초라는 아이는 마음이 아픈 아이다. 4살 때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에 대한 미움과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지냈던 시절 사촌들에게 당했던 구박에 마음이 틀어지고 박해진 아이다. 그래서 늘 얼굴에 인상을 쓰고 다닌 아이다. 그러면서 늘 무언가에 쫒기 듯 불안해하면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피했다. 한때는 그런 아이와 웃는 연습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아이들도 흡연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아픔과 고민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느 누가 그런 아픔과 고민 몇 가지 없는 경우가 없느냐 반문할 수도 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의지 문제에 귀결될 수밖에 없다.

허나 우리 어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흡연 문제를 단순히 아이들의 문제로만 생각하려 한다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살피려는 노력이 부족한데 말이다. 물론 원인을 알았다 해서 흡연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조금은 이해하면서 고칠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어쩌면 아이들의 문제는 흡연 그 자체보다도 그 속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 고민들이 아닌가 싶다. 선아가 아직까지 자신이 안고 있는 고민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해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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