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축 쳐진 채 엎드려 있다. 몇몇 아이들은 아예 의자에 누워 잠을 청한 아이도 있다. 10분간의 그 짧은 시간을 아이들은 나름대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엎드리고 누워 있는 아이들을 깨우다 보면 목소리 톤은 올라가고 그 목소리에 아이들은 눈을 비비며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잠자는 데 왜 귀찮게 깨웠냐는 표정이다.
"어이 이쁜이! 이쁜 얼굴 인상 쓰면 미워지잖아. 웃어야지. 그렇지, 웃으니까 이쁘잖아."
교실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수업이 시작된다. 발표시간이다. 오늘은 김현승의 '눈물'과 관련해 발표를 하는 시간. 발표할 내용 중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슬펐던 경험을 시로 써서 발표하는 게 있다. 눈물이란 시가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시라 그런 질문을 던졌는데 생각지도 않게 교실을 눈물바다로 만들어버렸다.
울어버린 아이들 마음속엔 진한 그리움이 일렁
자신이 쓴 글을 읽다가 눈물을 흘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이다. 많은 아이들이 사소한? 아픔을 시로 써왔는데 몇 몇 아이들은 가슴 속에 그리움으로 묻어두었던 슬픔과 아픔을 써왔다. 한 아이의 시를 보자.
열아홉 / 꽃다울 때 / 그 꽃이 / 꽃을 맺어
꽃 위에 / 꽃 있으메 / 아래꽃 / 휘어가니
윗 꽃이 / 아래꽃 보고 / 바람따라 /휘갔네
늘 웃음이 좋은 친구가 쓴 시다.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배경 설명을 원했더니 엄마와의 이별을 쓴 글이라 한다. 열아홉에 엄마는 자신을 낳았다. 그리고 어린 동생도 낳았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세상과 이별을 하고 말았는데 그 내용을 시로 쓴 것이다. 그런데 형식이 시조 형식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시조 공부도 하게 했던 이 친구는 시를 읽으며 눈물을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런데 이 친구의 첫 울음은 연쇄적 반응으로 나타났다.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눈물을 글썽인다. 그리움의 감정이 숨겨놓은 눈물샘을 자극한 것 같았다. 그럼 이번엔 재미나면서도 조금은 슬픈 시를 보자.
한 쪽 불이 나간 형광등 빛
짙게 내려앉은 창문 너머 밤하늘
아이고야
아웅다웅
우당탕탕
어둠 속에 흘러내리는
아이의 슬픔
수업 시간마다 눈을 똘망똘망 뜨고 바라보는 친구의 글이다.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아이고야 / 아웅다웅 / 우당탕탕'이 무슨 장면이냐 물었더니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싸우던 장면이란다.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 우당탕탕 싸우는 엄마 아빠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시를 듣고 재미있다면서 깔깔거리고 웃는다. 한 번 쯤의 경험에 의한 웃음이다. 그런데 난 아이들의 웃음과 함께 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짠했다.
지금은 열여덟의 숙녀로 성장했지만 어렸을 나이에 엄마 아빠의 사소한 싸움이 아이들에게 큰 슬픔과 상처가 됨을 이 친구를 통해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우리 집 아이들 앞에서 간혹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는 과거가 있음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다시 다른 시를 보자.
어둠이 낮게 내려진 밤
세상에 젖은 어머니의
어두운 옆모습
이슬이 시리게 내린 새벽
세상에 젖은 어머니의
어두운 등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의 주름을 보았다
그날 처음으로
가슴속 깊고 깊은 우물을 만들었고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참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이 힘든 세상을 우리들의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새벽의 시린 이슬을 맞으며 세상으로 나간다. 그렇게 세상과 싸우다 보면 늘어나는 건 주름살뿐이다. 그래도 우리들의 어머니는 자신의 주름살을 보고 한탄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애쓴 주름이기 때문이다.
진솔이란 친구의 시를 들으며 대부분의 아이들의 눈가에 이슬이 맺힘을 보았다.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늙고 백발이 성성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한동안 허공을 바라봐야 했다.
선생님이 대신 읽어주세요
눈물은 전염성이 강하다. 특히 여학생들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아이들은 울면서 웃는다. 슬프고 그립기 때문에 울면서도 그 그리운 마음을 글로 표현한 것 때문인지 시간이 지나면 금세 웃는다. 애잔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이번에 맨 앞에 앉아 있는 친구가 읽겠다고 하더니 한 소절도 못 읽고 눈물만 흘린다. 그러면서 내게 노트를 내밀며 "선생님이 읽어주세요"한다. 제목을 보니 '잔혹한 현실'이다. 시를 읽다가 아이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다. 주변의 아이들도 그 울음에 동참한다.
좀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 놓을 걸
그랬나 보다
이렇게 갑자기
떠나버릴걸
알았다면
하루의 반나절
목 놓아 울다가
지쳐 잠들고
이른 새벽 일찍 일어나
꿈이길 바라며
주무시는 어머니께 다가가니
사진을 보시다
새벽에 잠드셨는지
방안에는 온통 사진들이
비어있는 어머니의 옆자리를 보고
돌아서는 내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와의 사별과 텅 빈 어머니의 옆자리.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딸. 2년 전 아버지와 이별을 시로 표현한 이 친구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내게 읽어 달라 했지만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나 또한 이미 눈물의 전염성에 감염되어 있는 상태. 그렇다고 눈물을 보일 수 없어 읽어 내려가다 중간중간 끊기게 된다.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야, 선생님도 운다" "저 봐. 히히 눈물이 글썽해"하며 조잘댄다. 조금 전에 자신들의 글을 읽으며 울던 녀석들도 나의 글썽임이 뭐가 좋은지 웃는다. 눈가엔 촉촉한 이슬을 담그고 말이다.
이밖에도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시를 읽으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러면서 진한 그리움에 눈을 감는 아이도 있다. 난 그런 아이들의 글을 모아 학년이 끝날 때쯤 작은 글집으로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다. 그냥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마음들의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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