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는, 내 경험에 의하면,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숙달되는 것이다.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길들이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 편의 소설은, 그 소설이 씌어지는 시간까지의 그의 전 삶의 과정의 투사다.
그때까지 먹고 듣고 보고 읽고 느끼고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몸과 근육을 만든다. 소설은 그 근육의 움직임이다. 몸에 배어 있는 것들이, 배어 있는 것들만이 밖으로 배어 나오는 것이다."
소설은 허구다. 소설이 꾸며낸 이야기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소설은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허구이면서 현실인 것이 소설이란 것이다.
작가 이승우의 <소설을 살다>(마음산책)를 읽으면서 소설이란 결국 내 삶의 한 부분이고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소설 쓰기란 것이 작가의 단순한 상상력에 의존하여 쓰는 게 아니라 먹고 듣고 보고 읽고 느끼고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들, 즉 자신의 오감이 작용한 근육들에 의해 씌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을 살다>는 소설 쓰기의 일상적인 의미와 소설가의 삶의 태도에 대하여 쓴 하나의 인문학적 책이다. 그러면서도 에세이적인 요소가 풍부한 자기 고백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책머리에서 자신의 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는 소설가로서의 삶과 관련된 글들이 모여 있다. 내가 쓴 소설 작품에 얽힌 사연들과 내 시대의 문학에 대한 소회와 읽어온 소설들에 대한 단편적인 감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인들은 시인이나 소설가 하면 뭔가 다른 특별한 생각을 하고 삶을 살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승우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소설가의 삶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그에게 소설 쓰기는 하나의 삶이다. 하나의 습관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소설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머리끝에서, 발끝에서 때론 책을 읽다가 사소하든 거창하든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나오는 생명처럼 태어났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피력한다.
그러면서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한다. 소설가는 유명한 작품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소설을 끊임없이 쓰고 있기 때문에 소설가라고 말한다. 비록 자신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쓰지 못할지언정 그는 계속 쓰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절필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 이 책은 일반 독자나 소설 지망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일종의 창작노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미 그는 한 차례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라는 창작노트를 낸 바 있다.
<소설을 살다>는 전편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소설을 왜 쓰는지, 자신의 문학적 스승은 누구인지, 자신의 데뷔작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소설의 소재는 어떻게 고르고 취하는지 등 창작할 때의 여러 고민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지금까지 그가 써 온 소설들의 배경과 소재에 대하여 이야기함으로써 소설 쓰기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허면 그는 소설의 자양분을 오직 경험에서만 찾을까. 그렇지 않다. 자신의 경험이 소설의 1차적 재료가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독서 또한 매우 귀중한 자양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보면 1부에서 자신의 소설 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소설 밖-소설 읽기'라 명명한 2부에선 자신의 독서 편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에게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부족한 자신의 소설적 영양분을 섭취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는 늘 읽고 쓰고자 애를 쓴다고 말한다. 어쩌다 소설을 아니 글을 쓰지 못하면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듯하다고 말한다. 그에게 쓰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소설가를 여러 편의 작품을 통해 한 편의 자서전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 소설가의 삶을 엿본다는 것은 색다른 맛이다. 그 삶을 엿보면서 소설 쓰기의 한 방법을 알아가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소설가 이승우의 <소설을 살다>엔 이 두 가지가 있다. 그리고 소설가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자세로 글을 쓸 것인지를 평이한 언어들로 채워 넣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소설로 인생에 복무한다"는 다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