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개의 짧은 사랑의 변주곡 <내가 몇 번이나 사랑하는지>

2008.09.17 15:49:00

사랑(?)이 범람하는 시대이다. 넘치다보니 사랑의 모습도 다양하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방식 또한 시공간을 떠나 다양한 형태로 연출된다. 그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읽었다. 보았다. 세르주 종쿠르의 소설 <내가 몇 번이나 사랑하는지>를 통해서다.



소설 속엔 열일곱 개의 짧은 사랑의 변주곡들이 연출되어 있다. 그런데 그 사랑의 모습은 결코 화려하지도 감미롭지도 진하지도 않다. 열정이 가득하지도 않다. 사랑해도 되고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랑들도 있다.

그래서 소설 속의 사랑은 일견 불안해 보이기도 하다. 헌데 그 소설 속의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모습이다. 나의 모습이고, 너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모습들이 특별하지도 않다.

그저 우리 일상의 생활 속에 다분히 일어나고 있는 모습들이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짧게, 짧게 그려져 있다. 살짝 안을 들여다보면 이런 것들이다.

외로움에 젖어 사는 여자와 남자, 인터넷을 통해 사랑을 키우고 깨지고 다시 새로운 사랑이라는 만남을 찾아 떠도는 남자, 홀로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여자로서의 욕망을 억제할 수 없어 외딴 남자를 집으로 들여와 사랑을 나누는 여인, 사십대 남자와 딸 같은 20대 여자와의 힘겹고 고달픈 사랑, 서로 사랑하면서도 둘이 함께 하는 것이 두려워 남자를 은연중에 멀리하고자 하는 여인, 젊은 시절 달콤하고 아름다운 육체적 사랑을 잊지 못해 몸 전체를 성형수술을 하는 중년의 부부, 이런 사람들의 내면을 살펴보면 조금은 쓸쓸하면서도 건조한 사랑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녀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일을 끝내고 나온 나에게로 일자리가 없는 그녀가, 그녀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지만 하지 않은 나에게로 그녀가 다가왔다. 그녀의 눈에 고마움의 표현이 고통처럼 밀려왔다.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없이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입에 내 입술을 포갰다. 그리고 키스 대신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깨물었다." - <피가 흐를 때까지> 중에서

우연히 생일 파티에서 만난 남자와 여자. 여자는 과거 많은 아픔을 지니고 있다. 남자는 과거의 상처에 우울해하는 여인과 만나면서 늘 기다린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이들의 사랑에 치유과정은 없다. 서로의 심리가 조금은 건조하게 표현된다. 어찌 보면 참 싱겁게 사랑이 이루어지고 기다리고 헤어진다. 사랑이란 그저 외로움을 달래주는, 또는 고통을 잊기 위한 그저 일상적인 것처럼 보여준다.

"에브와 나는 서로의 육체를 나누는 사이였다. 서로의 몸을 나누는 동안에는 서로의 번호 또한 자주 나누었다. 하루에 스무 번도 넘게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곤 했다. 지나치게 잦았던 연락의 대부분은 아무 의미 없는 말들로 채워졌고, 우린 서로 날것 그대로의 말들을 주고받으면 서로의 알몸을 보고 싶다는 욕망을 전달하기에 급급했다. - <휴대폰 속에 저장된 모든 삶> 중에서

현대인의 사랑방식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혼합 형태이다. 디지털로 시작한 만남과 사랑이 아날로그로 이어진다. 그리고 디지털 속으로 들어간다.

인터넷은 가볍게 그러면서도 고독한 모습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사람들은 그 인터넷을 통해 만나기도 전에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휴대폰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문자를 주고 받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휴대폰 속엔 사랑도 있고 우정도 있고 미움도 있다. 버려야 할 것도 있다.

자신의 핸드폰을 열어보라. 그리고 저장된 번호를 보며 번호의 주인공들을 떠올려 보라. 잊혀진 사람도 있을 거고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은밀한 만남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르주 종쿠르는 그런 일상의 삶과 사랑을 매우 독특한 시각으로 들려주고 있다.

열일곱 개의 사랑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진 세르주 종쿠르의 소설은 지금까지 읽은 어떤 소설보다 독특하다.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격정적이지 않다. 두 개의 소설을 제외하곤 인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남자와 여자로 이야기한다. 어쩌면 소설 속의 이야기가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일종의 거대한 사랑의 감정 양성소라고.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결코 사랑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겠지만 그래도 사랑이란 게 있어 눈물도 흘릴 수 있고 웃음도 웃을 수 있다고. 소설 속의 이야길 통해서 말이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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