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같은 가을이다.
벽에 달린 선풍기만이 삐그덕거리며 교실의 무더위를 식히려 애를 쓰는 모습이 오히려 안쓰러워 보인다. 저거라도 있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쉬지 못하고 종일 일하는 모습이 딱딱한 의자에 앉아 밤늦게까지 책과 씨름하는 아이들 모습과 교차되어 더 안쓰러워 보인지도 모른다.
수업이 끝나갈 즈음 한 아이를 불렀다. 어제 밤늦게까지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다가 집에 갔던 아이다.
“어제 많이 울었니?”
“네.”
“어때?”
“가슴이 확 뚫린 것 같아요. 언제 막힐지 모르지만요.”
“그래? 그럼 이거 한 번 읽어볼래?”
그러면서 읽고 있는 책의 한 부분을 보여주며 읽어 보라 했다. 이런 내용이다.
‘상처는 정말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무서운 독일까? 아니다. 상처야말로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는 물감이다. 상처가 있기에 우리는 진정 깊은 사랑을 할 수 있고 상처 덕분에 따뜻하고 정직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상처를 통해 한층 더 고결한 영혼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
읽고 난 아이가 싱긋 웃는다. ‘어떠니?’ 하고 물으니 ‘좋아요’ 한다. 울음의 이유를 물었더니 아빠와 엄마의 사이가 많이 안 좋다고 한다. 그래서 답답하단다. 답답해서 학교를 뛰쳐나갔단다. 그 아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길 수 있겠니?”
“네. 해볼게요.”
그렇게 대답해주며 조금은 허전하면서도 힘 있는 미소를 짓는 아이가 고맙고 예쁘다. 그 아이에게 나 또한 미소 하나로 힘을 주었다. 아이의 미소와 내 미소가 교차되자 아이들이 무슨 정다운 이야길 나누느냐고 묻는다. 이에 우리는 소이부답(笑而不答)으로 답을 대신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 한두 개 쯤은 지니고 살아간다. 겉으로 보이는 웃음 뒤에서도 크고 작은 상처 때문에 눈물을 남몰래 흘리는 아이들도 많다. 그리고 그 상처를 이기지 못해 어둠의 골목을 해매이거나 자신의 길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런 모습을 그냥 지켜봐야 할 때가 많다. 안타까운 마음은 가득하지만 어찌해주지 못한다.
선이(가명)라는 아이가 있다. 볕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방에서 어린 동생과 아빠랑 살고 있다. 엄마는 아빠의 폭력과 시달림에 집을 나갔다. 선이도 가끔 매를 맞고 학교에 온다. 그런 선이는 학교에서 말이 없다. 말을 하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보는 선이는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수업을 듣는다.
그런 선이가 추석을 앞두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빠가 음독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어두컴컴한 지하방에서 선이와 어린 동생이 경험했을 무서움과 당황스러움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하고도 남는다.
선이 아빠의 삶은 비참할 정도로 곤궁하다. 공사판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생활을 해왔지만 허리를 다쳐 그마저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술을 마시고 가끔 폭언을 하고 매를 들지만 선이는 아빠를 미워하지 않는다. 아빠 또한 선이를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주어진 현실이 너무 힘들어 이따금 잘못된 행동을 한다. 그래서 아빠는 미안할 뿐이다.
예전에 ‘아빠가 사랑스런 이유’를 써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선이는 어떻게 써올까 무척 궁금했었다. 선이 담임이 전하는 이야길 들으면 아빠를 미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이는 아빠가 사랑스런 이유를 마음 시리게 써왔다. 이 글을 쓰면서 선이가 써온 글을 다시 읽어봤다. 몇 가지만 보면 이런 내용이다.
‘교복 터진 걸 꿰매주실 때. 가끔 내 옷 빨래해주고 교복 다려 주실 때. 내가 다친 곳 약 발라 주실 때. 술 먹으면 술병에 숟가락 꽂고 노래 부를 때. 등등….’
누구나 집에 들어오면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된다. 세상의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어 한다. 그런데 주어진 현실이 너무 힘들고 아파 마음과는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부모도 그렇고 자식도 그렇다. 선이의 글을 보고 선이 아빠는 이렇게 써 보냈다.
‘사랑하는 딸 선아. 우리 딸 이제 보니까 많이 컸구나. 다른 아빠처럼 풍부하게 해주지 못해 가슴이 얼마나 아팠는지…. 늘 미안하다. 그래도 아빠는 우리 딸 때문에 잘 버틸 수 있었단다. 앞으로 열심히 살아가자. 이렇게 자랑스럽게 커줘서 정말 고맙다. 사랑한다 우리 딸.’
그때 선이는 자기 마음을 아빠한테 읽어주면서 아빠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고, 아빠도 들으면서 자신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고 한다. 서로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리라. 자식으로서, 아빠로서 상대에게 잘해주고 싶은데 주어진 환경이 너무 힘들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어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가난한 부녀의 모습. 어찌 그 부녀지간이 선이와 선이 아빠만 있을까. 조금만 눈을 돌아보면 그런 부모와 자식이 숱한 걸.
어제 엄마 아빠 때문에 울었던 아이와 선이, 둘은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상처를 상처로 남게 하지 않고 상처를 극복하여 더 큰 사랑과 따뜻함을 지닌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상처야말로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는 물감이 된다는 말처럼 말이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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