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인삼축제를 여는 곳이 금산이다. 금산이라는 지명이 인삼을 상징하듯 금산에 가면 인삼과 연관된 가게들이 많다. 사람을 닮은 인삼을 재배하는 사람들이라 마음씨도 온순하다.
금산에서 처음 인삼이 재배된 곳이 개삼터다. 금산에서 진안방향으로 13번 국도를 달리면 남이면 성곡리를 만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1.5㎞ 거리의 진악산 아래에 개삼터가 있다. 개삼터에 최초로 인삼을 심은 것을 기리기 위해 지은 개삼각과 재현한 강처사의 고택이 있는데 개삼각 안에 산신령이 강처사에게 인삼을 하사하는 장면 그려져 있다.
개삼터에 관한 전설은 금산군청문화관광 홈페이지(http://tour.geumsan.go.kr)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진악산 관음굴에서 모친의 쾌유를 빌던 중 현몽한 산신령으로부터 ‘관음봉 암벽에 빨간 열매 3개 달린 풀이 있으니 그 뿌리를 달여 드시게 하라’는 계시를 듣고 그곳을 찾아가 뿌리를 캐어 달여 드리니 모친의 병환이 완쾌되었다. 그 씨앗을 성곡리 개안이 마을에 심어 인위적으로 재배를 시작했고 모습이 사람의 형태와 비슷해 ‘인삼’으로 불리게 되었다.
개삼터에서 오던 길을 되짚어 금산방향으로 가다 금산공설운동장 옆에서 우회전해 황풍리까지 간다. 이곳에서 37번 국도를 타고 부리면 방향으로 가다보면 불이리 도로변에 청풍서원이 있다.
고려 말의 충신인 야은 길재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청풍서원(충남 문화재자료 제16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건물이다. 바로 앞의 백세청풍비(百世淸風碑)와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가 길재의 업적과 충절을 후세까지 전해준다.
길재는 고려가 망한 후 태자 방원이 관직을 내렸으나 끝내 나가지 않은 충신이다. 불이리라는 마을 이름도 두 임금을 섬기지 않았던 길재의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우러러 사모하기 위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시조에서 고려의 멸망을 안타까워하던 길재의 안타까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청풍서원에서 적벽강으로 가는 평촌리의 길가에 구암사가 있다. 구암사는 조선 초기의 학자로 세종 때부터 성종 때까지 집현전 학사, 이조판서, 대제학을 지낸 문양공 눌재 양성지를 배향한 사우다.
눌재는 각 지방에 의료기관을 설치할 것과 우리나라 고유의 풍습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등 현실적인 민생정책을 연구해 존경받는 인물이다. 눌재의 행적과 공훈을 새긴 눌재 양선생묘비와 거북이 모양의 구암이 남아있다.
바로 앞에 있는 옛날의 정미소와 떡 방앗간을 구경하고 나오면 잘생긴 느티나무 두 그루를 만난다. 이곳에서 직진해 적벽강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면 유유히 흘러가는 금강과 산을 곱게 물들인 단풍이 멋지다. 강물에서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인다.
수통대교를 건너기 전에 만나는 오른쪽의 수통리 도파마을이 궁에서 쫓겨나온 장금이가 백본이라는 약초재배에 성공했던 대장금 다재헌 촬영지다. 수통대교를 건너 수통리를 지난 후 다시 적벽교를 건너면 단풍을 머리에 이고 있는 기암절벽과 맑은 강물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놓았다.
중국의 양자강 상류에 있는 천혜의 절경 적벽강과 이름이 같은 것으로도 이곳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 30m가 넘는 붉은색 절벽과 그 아래를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 사시사철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봄에는 예쁜 꽃, 여름에는 푸른 소나무, 가을에는 오색단풍, 겨울에는 설화가 강물에 비치는 풍경도 볼만하다.
[교통안내]
대전통영간고속도로 - 금산 IC - 금산 - 13번 국도 진안방향 - 금산공설운동장 - 남이면 성곡리 - 우측 1.5㎞ - 개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