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난 백발(白髮)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白髮)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고려 때 우탁은 늙음을 한탄하는 이런 노래를 지었다. 뜨겁고 푸른 청춘 다 보내고 흐르는 시간을 이기지 못해 늙어버린 시인은 늙음을 막아보려고 하지만 백발은 지름길로 자신을 찾아온다.
젊은 시절 사람들은 그 젊음이 영원하리라고 믿는다. 건강도 영원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젊음도 건강도 한때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진시황 같은 이가 불로장생을 꿈꾸며 별의별짓 다 했지만 결국 그도 한줌의 흙이 되고 말았다. 늙고 병들고 죽음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꿈꾼다. 건강하게 살다가 병고에 시달림 없이 편안하게 눈을 감기를.
지나온 삶을 잃어버린 치매 노인들을 찾아
아이들을 데리고 치매노인들이 주로 요양하고 있는 시설을 찾았다. 아직 따스한 가을볕이 남아 가지에 달린 나뭇잎을 비추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삼천동 쑥고개 옆에 위치한 선덕효심원이란 곳이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요양원은 조용했다. 현관에 어머니와 아들이 나와 작별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요양원의 어머닌 아들에게 이것저것 챙겨먹으라는 소릴 하며 손을 흔든다. 아들은 어머니를 두고 가는 게 죄송한지 우물쭈물 거리며 쉽게 되돌아서지 못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어머니란 분은 그리 아프지 않아 보여 나중에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이승희 씨에게 물으니 심한 환자도 있고 가벼운 환자도 있다고 말해준다.
치매는 정상적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어떤 원인에 의해 대뇌신경에 손상이 와서 기억이나 지각, 인식 능력이 떨어져 과거의 기억이나 일상생활의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치매 원인으로 여러 가지 있지만 뇌경색 같은 걸로 오는 경우도 있다 한다.
우리가 찾은 요양원은 신체가 불편하여 온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치매 증상을 가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머물고 있었다. 치매 환자들이지만 거의 온전한 기억을 가진 분들도 있고, 기억도 없고 몸을 가누지 못해 타인의 도움에 의해 거동을 해야 하는 분들도 많았다.
아이들은 이승희로부터 요양원의 현황과 주의사항을 듣고 그녀가 지정하는 장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1층과 2층으로 나누어 몇몇 아이들은 유리창을 닦고 일부는 주방청소, 방청소, 환자들이 거주하는 거실 같은 마당 청소를 했다. 몇몇 아이들은 빨래를 하고 널었다.
1시간 정도의 청소가 끝나자 아이들은 거실 쉼터에 모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휠체어를 밀어주는 일을 했다. 처음 아이들은 누워 있고, 연신 손뼉을 치고, 등이 간지럽다며 ‘등 간지러워~ 등 간지러워~’ 소리 지르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어색한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망설인다.
그러나 그런 모습도 잠시, 민희가 휠체어에 앉아 무심하게 창밖을 내다보는 한 할머니에게 다가가 어깨를 안아주며 뭐라 말을 하니 할머니의 표정이 밝아진다. 둘은 금세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모습을 본 다른 아이들도 할머니 한 분씩 찾아가 이야기도 나누고 휠체어를 밀며 이런저런 이야길 나눈다.
요양원의 할머니들의 모습은 모두 외로워보였다. 무표정이다. 사회복지사를 비롯한 직원, 봉사자들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어도 늘 외로운 것 같았다. 치매란 게 제 정신을 놓을 때도 있지만 종종 정신이 돌아올 때도 있는 것이라 그때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다 보고 싶지. 내 새끼들인디.이경임이 할머니도 그랬다. 80이 넘었지만 정확한 나이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가족들의 이름은 다 기억난다며 이름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반복해서 불러준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름과 자식들 사는 곳도 온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
“할머니 집이 어디세요?”
“우리 집? 진안군 백운면이여. 진안군 백운면이 내가 살던 집이여.”
“집에 가고 싶으세요?”
“그럼 가고 싶지. 그런데 안 보내줘. 자식들이 와도 안 데려가.”
“왜요?”
“집에 가면 다신 여기 안 온다고 떼쓸까봐 그러지. 아들만 가끔 갔다 오고 난 안 데려가. 떼쓸까봐.”
“집에 좋은 거 있으세요?”
“우리 집 아쌈하게 지었어. 방이 여섯 개여. 그 집에서 일 년 살다가 여그 왔어. 총각이 나 데려다 줄 거여? 자식들이 나 안 데려가.”
사실 할머닌 지난 추석에 집에 가서 쉬었다왔다고 한다. 온 가족이 다 모여 떠들썩하게 웃고 떠들고 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길 했다. 그런 할머니에게 누가 제일 보고 싶으시냐 물으니 묻는 이를 민망하게 한다.
“다 보고 싶지. 내 새끼들인디.”
할머니와 이야길 나누는데 휠체어를 밀던 노을이가 커피를 뽑아와 할머니를 드린다. 홀짝거리며 마시는 모습이 꼭 우리 어머니를 닮았다. 무릎이 아프다길래 무릎을 맛사지 해주니 좋다며 웃는다.
젊은 사람은 늙음을 생각지 않는다. 평생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며 살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노인들이 머물고 요양원이나 부모 없는 영아원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보내면 마음이 달라진다. 아이들도 그랬다.
"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언젠가 늙어서 저렇게 될지 모르잖아요. 정말 열심히 살아야 후회를 덜 할 것 같아요."
" 눈물이 나려고 해서 혼났어요. 아빠 생각도 나구요. (미혜는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에 있다.) 담에 또 오고 싶어요."
" 조금 힘들었지만 할머니들 휠체어 밀어드려서 좋았어요. 마음이 아프기도 하구요."
" 어린애 같아요. 많이 외로우신 것 같았어요. 가족들을 보고 싶다며 제 손을 꼭 잡는데 눈물이 나려고 해서 쬐금 그랬어요."
아이들이 한 일이란 청소하고 휠체어 밀어드리고 잠시 말동무 해준 것 밖에 없지만 느끼는 게 많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