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순간순간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시작

2008.12.10 14:16:00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로 시작하는 법정 스님의 최신작 '아름다운 마무리'는 가르침이 많은 책이다. 소유의 시대를 향해 소금 같은 언어로 시대를 밝히는 금언들로 가득 찼다.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클래식 음악이나'Angel of the morning'을 들으며 독서하는 아침의 행복을 사랑한다. 아침 시간만큼은 그 어떤 것의 유혹으로부터도 자유롭기를 갈망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급한 공문도, 다른 선생님과 차 한 잔의 여유마저도 포기하지 않으면 달아나버리는 귀한 시간이다. 분분하게 내리는 눈발에 덮인 청정한 월출산의 장엄함을 바라보며, 그 산의 장엄한 삶을 한 귀퉁이라도 따라 살 수 있기를 바라며 나도 아이들도 정신의 스승을 찾아 좋은 책이 주는 말없는 가르침 앞에 겸손해지는 아침.

즐겨 듣는 음악의 제목처럼 아침의 천사는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만 대 이상 내려온 조상의 음덕과 자연의 순리 앞에 생명으로 피어난 이 아이들이야말로 아침의 천사이다. 저 월출산과 함께 자신의 삶을 가꾸어 가기를 바라며 오늘도 변함없이 책으로 아침을 연다.

이제 이 아이들과 남은 시간도 20여 일뿐이다. 이젠 아름다운 마무리를 향해 마지막 갈무리를 해주며 아이들의 키를 재어 보고 열매를 살펴보며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 이제는 기본적인 학교 생활 자세가 자동화 되어서 서로에게 길들여져서 정이 들어버린 것 같다. 작은 꾸지람에도 서운해하며 눈물을 감추는 모습,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고 놀고 싶다며 떼를 쓰는 모습을 보며 내 아들의 2학년 때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익숙해진다는 것, 길들여진다는 것은 원만해짐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모습과 낯설음의 반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음 해에도 담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아이들이 가진 장점을 찾아내지 못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200일 이상 아침 독서 40분 하기, 일기 쓰기, 음식 남기지 않기, 점심 후 양치질하기, 철저한 개인 별 숙제 검사, 군것질 안하기, 예쁜 글씨 쓰기, 주 1회 독서발표회, 문장으로 받아쓰기와 같은 일들은 날마다 자동화되어 있다. 문제는 늘 방학이었다. 부모님이 바쁘거나 조손가정의 경우는 정형화된 공부 습관이 깨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완해 주기 위해서 겨울방학 때에도 일정 기간 방과후학교를 운영하지만 일상적인 학교 생활만큼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다.

법정 스님이 사는 암자 뒤를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처럼 우리 반 교실에서도 조용한 물소리가 흐른다. 우리 반 아이들 숫자와 같은 여섯 마리 금붕어는 산소호흡기가 뿜어내는 물줄기를 맞으며 조용한 교실의 아침을 운치있게 만들고 있다. 이제 보니 시원스레 옷을 다 벗어버린 교문 앞을 지키는 벚나무도 아침의 천사이다.

그는 지금 지난 봄의 화려한 봄나들이, 초여름을 싱그럽게 열었던 진초록 잎새들의 풍성함, 돌아갈 길을 재며 아름답게 물들이던 늦가을의 오색 빛 가을 잎을 떠나보내고 무소유로 서서 빈 겨울을 시원하게 만끽하고 서서 하늘과 땅의 기운을 이어주는 천사인 것이다.

자연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말없이 보여주며 나를 가르치며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새 봄이 오면 어김없이 벚꽃을 피우고 새 잎을 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약속을 가슴에 새긴 채. 나의 새 봄도 그렇게 새로운 아이들을 꽃처럼 피워낼 준비를 하며 지금 이 아이들에게 모든 걸 다 주고 겨울나무가 되라고.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제목이 주는 의미심장함에 매료되어 출간을 알리는 산문사의 서간평을 읽은 날로부터 기다렸던 책이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모두가 한 때일뿐. "라는 죽비소리로 시작하는 서문의 칼같은 외침은 그대로 잠언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 해가 빠져나가는 12월에 가장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아이들 곁에서 책장을 넘기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아직도 잔뜩 잎을 달고 서 있는 내 삶의 나무가 무거워서이다.

이 아이들과 20여 일쯤 살고 나면 다시 새로운 아이들과 시간을 꾸려야 한다. 아이들도 나도 이제 겨울나무처럼 마무리를 위한 시간을 준비하는 중이다. 일상적인 교과를 가르치고 날마다 반복적으로 아침독서로 아침을 열고 받아쓰기와 숙제검사로 이어지는 반복적인 학교 생활 속에 보낸 1년이다.

물이 흘러가듯 날마다 쌓인 시간의 부름켜와 나이테가 아이들 내면에 차곡차곡 아름답게 쌓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시험지를 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멍하니 앉아 있던 아이는 이제 제법 공부를 잘하여 나를 기쁘게 한다. 연로한 할머니 그늘에서 제 몸 하나 깨끗이 건사하지 못하고 아직도 학교에 와서야 아침마다 이를 닦여야 하는 그 아이의 삶이 안타까워 그저 답답하다.

공부하는 버릇이나 일기 쓰는 버릇은 모두 잡혔지만 씻는 습관이 안 되어서 날마다 아이와 씨름을 하는 중이다. 옷을 사다 입혀도 며칠이 못 가서 헌 옷을 만들어 버리는 아이를 3학년으로 올려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가라앉히는 무거운 돌이다.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노랫말처럼 담임인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는 없었다고 스스로 위안하는 편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래도 여섯 명 모두가 완전학습을 이루고 다음 학년으로 올라간다는 사실만은 올해에 거둔 알찬 수확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에 남았던 대목을 옮겨서 불확실한 시대, 경제 한파로 어두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신 건강에 약이 될 법정 스님의 잠언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우리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저버릴 때 늙는다. 세월은 우리 얼굴에 주름살을 남기지만 우리가 일에 대한 흥미를 잃을 때는 영혼이 주름지게 된다. 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탐구하는 노력을 쉬게 되면 인생이 녹슨다.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부자란 집이나 물건을 남보다 많이 차지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갖지 않고 마음이 물건에 얽매이지 않아 홀가분하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라 할 수 있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텔레비전 프로나 신문기사로 머리를 가득 채우는 것은, 영양가 없는 음식을 몸에 꾸역꾸역 집어넣은 것처럼 정신 건강에 해롭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나는 누구인가 하고 근원적인 물음을 갖는 것, 내려놓음과 비움이다. 삶의 본질인 놀이를 회복하고 심각함과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천진과 순수로 돌아가는 것.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며 자비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모자랄까 봐 미리 준비해 쌓아 두는 그 마음이 곧 결핍이 아니겠는가. "

"세상에 책은 돌자갈처럼 흔하다. 그 돌자갈 속에서 보석을 찾아야 한다. 그 보석을 만나야 자신을 보다 깊게 만들 수 있다. 책을 가까이 하면서도 그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일지라도 거기에 얽매이면 자신의 눈을 잃는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서도 콕 막힌 사람들이 더러 있다.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을 때 열림 세상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책에 읽히지 말고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

나는 책 욕심, 옷 욕심이 많다. 어린 날 가져 보지 못한 한풀이를 하듯 책을 사들이고 옷을 사곤 한다. 가질 수만 있다면 엄마를 가지고 싶건만! 선승이 내리치는 죽비소리에 놀라고 부끄러워 돌아보지만 옷가게 앞을 지날 때면, 책방 앞을 지날 때면 나의 의지는 나를 이기지 못한다.

"삶의 비참함은 죽는다는 사실보다도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있다. 꽃이나 달을 보고도 반길 줄 모르는 무뎌진 감성, 저녁노을 앞에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무감각, 넋을 잃고 텔레비전 앞에서 허물어져 가는 일상 등, 이런 현상이 곧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섬이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친절이다. 이웃에 대한 따뜻한 배려다. 사람끼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보다 따뜻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만나는 지식마다 그가 내 복밭이고 선지식임을 알아야 한다. "

"조그만 친절이, 한마디 사랑의 말이 저 위의 하늘나라처럼 이 땅을 즐거운 곳으로 만든다." 는 J.F 카네기의 말이 절실한 요즈음이다. 성장의 논리, 개발의 논리, 경제 논리를 앞세우다 잘못된 경제 정책으로 온 세계가 수렁에 빠진 지금이야말로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기 위해서 정신적 스승들의 잠언을 귀담아 들을 때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겨울이 길어도 희망의 봄은 반드시 오듯이, 밤이 아무리 길어도 새벽은 반드시 찾아온다. 경제한파로 힘든 부모님의 한숨 속에 아이들이 움츠러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낮은 자세로 겨울을 나면서도 새 봄을 싹 틔울 튼실한 씨앗을 책갈피마다 숨겨둔 '아름다운 마무리'는 천연소금처럼 깊은 맛을 지닌 아껴야 할 책이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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