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증 대신 보고 느끼며 즐거워했던 청주삼백리 답사

2008.12.14 21:38:00

청주시 경계선을 따라가며 문화답사를 하고 있는 청주삼백리가 2008년을 마무리하는 날(7일)이다. 참석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지만 부랴부랴 출발장소인 흥덕구청 주차장으로 갔다. 회원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보니 HCN충북방송 촬영 팀도 보인다. 청주삼백리에서 제작한 안내지도로 오늘 답사 산행할 코스를 살펴보는 것으로 일정이 시작되었다.


1년 동안 답사를 후원해준 유철호 이사님이 직접 운행하는 우진교통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중심가와 36번 도로를 달려 구성리 입구에 도착했다. 가까운 곳에 세워져 있는 목은선생영당 표석은 주변의 건물에 가려 도로에서 보이지 않는다. 세운 사람들의 무지를 탓할 수밖에 없는 현장이다.


이곳에서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위치한 주성강당(酒城講堂)으로 가다보면 오늘 답사의 최종목적지인 상당산성이 산 뒤편으로 고개를 내민다. 낙엽이 진 겨울이라 배낭을 짊어진 회원들 여럿이 시골길을 걷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오랜만에 환경운동연합 김학성 대표를 만나 근황을 나누다보니 가까운 거리에서 멋진 송림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곳 바로 아래에 주성강당과 목은영당이 있다.

주성강당에 도착하자 충북참여연대 강태재 대표가 고려시대 삼은이었던 목은 이색과 주성강당의 역사에 대해 들려준다. 이번 답사에는 청주삼백리 송 대표의 아들이자 답사의 단골손님인 영준이의 창신초등학교 5학년 7반 친구들과 선생님까지 참석했다. 안내판 앞에서 진지하게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스럽다.




몇 번 문을 두드리자 영당 안에 살고 있는 후손이 문을 열어준다. 안으로 들어가 훌륭한 유학자를 많이 배출했다는 주성강당의 마루, 대들보, 온돌방을 구경했다. 목은영당으로 올라가니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관복차림의 영정이 맞이한다. 후손이라며 영정 앞에 절하는 회원도 있다.

청주시청 홈페이지(http://www.cjcity.net) 문화재상세정보에 주성강당(충북문화재자료 17호)에 대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주성강당(酒城講堂)은 목은영당 내에 있는 건물로서 유학자들이 학문을 닦는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본 건물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창건 후 수차례의 보수가 있었으며, 1996년 지붕 및 서까래 보수공사로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본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으로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로 온돌방을 설치했으며, 자연석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설치하고 네모로 된 기둥을 세웠다. 특히 대들보는 크고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다. 각 부재가 잘 남아있어 조선시대의 목재 다루는 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목은영당(牧隱影堂) 조선 숙종 36년(1710)에 창건되었으며, 1979년 중건되었다. 본 영당에는 고려 말의 문신이며 성리학자인 목은 이색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목은 이색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시대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문하에 권근, 김종직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문인보다 무인의 업적을 부풀리며 성역화 하던 시기가 있었다. 주성강당과 목은영당의 보존이나 관리가 허술함을 보며 해방 후 오랫동안 군인 출신들이 대통령을 하며 생긴 병폐 중 하나라는 얘기도 나눴다.

아뿔싸, 사진 몇 장 찍지도 않았는데 카메라가 충전을 빨리하라는 표시를 보내온다. 보조 충전지도 챙기지 못할 만큼 급하게 참석한 것을 탓하며 답사 길이 아직 멀지만 카메라를 배낭에 집어넣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기도 했고, 답사에서 가장 확실한 물적 증거인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무거웠다. 그래도 영정을 카메라에 담은 것에 위안을 삼으며 보고, 느끼며, 즐거워하는 답사를 하기로 했다.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고 휴대폰의 충전지까지 방전되며 일이 꼬이자 카메라와 휴대폰에서 해방된 하루를 보내자는 오기까지 발동했다.

주성강당에서 나와 마을을 벗어나 다시 길게 줄을 만들며 주성동과 국동리를 이어주던 산길을 걸었다. 이곳에서 처음 만난 고개의 이름이 아시고개다. 아시가 우리말이냐, 일본말이냐로 의견이 분분하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처음ㆍ애초ㆍ애벌이라고 써있기도 하고, 손으로 빨래를 하던 시절에 처음에 대충 빠는 것을 아시빨래라고 했던 것으로 봐선 아시고개가 첫 번째 고개나 낮은 고개를 뜻하는 것 같다.

아시고개에서 우측 능선으로 접어들면 산행하기 좋은 오솔길이 한참 이어졌다. 그 끝에서 백화산(해발 247m) 정상의 쉼터를 만났다. 체육기구와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데 바로 앞 가까이에 우암산이 보인다. 청주의 북쪽지역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이라 갑자기 등산객들도 많아졌다.

잠시 쉬며 땀을 식힌 후 산성방향으로 향했다. 능선이지만 산행하기 좋을 만큼 평탄한 산길을 걷다보면 길옆에서 서낭당을 만났다. 송 대표는 이곳이 청주시 율량동 상리와 청원군 내수읍 국동리를 연결하는 상리고개로 바람이 많아 바람내기로도 불렀다고 설명했다. 그제야 상리에서 가까운 동부우회도로의 길가에 바람막이라는 레스토랑이 있다는 걸 생각해 냈다.

상리고개에서 산성으로 가다보면 왼편으로 여러 명이 함께 쉴 수 있는 바위가 있다. 예전에 매가 많이 날아들었다는 매바위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국동리 방향의 조망이 일품이다. 바위 바로 아래 죽은 소나무가 있는 곳은 풍수지리 하는 사람들이 청주 주변에서 손꼽는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단다. 좋은 자리라면 살아 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탐을 내나보다.

두런두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산성이 눈앞이다. 미호문 아래에 있는 약수터에서 약수로 목을 축였다. 송 대표는 약수터 옆에 쌓은 돌탑의 아랫부분에 성 돌이 들어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미호문 앞 잔디밭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출발시간을 간신히 맞추느라 달랑 도시락만 들고 왔는데 먹을 게 풍년이다. 1년을 마무리하는 답사라 회원들도 많이 참여했고 기분 좋을 만큼 술잔도 받았다.

상당산성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 미호문이다. 미호문에 올라 미호천과 미호평야를 바라봤다. 서문에서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호랑이가 산을 내려오는 형태로 서문의 위치가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한다거나 서문에서 남쪽의 성벽을 바라보면 성벽의 형태가 활처럼 생겼다거나 미호문(弭虎門)에 왜 ‘활고자 미’와 ‘범 호’자를 사용했는지에 대한 의견도 여러 가지다.

미호문에서 남암문까지는 성벽을 따라가며 여럿이 함께 걸어도 될 만큼 넓은 길이 이어지고 한눈에 보이는 청주 시내의 풍경과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지는 하늘 때문에 발걸음이 가볍다. 남암문 위에서 상당산성을 지나는 한남금북정맥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누군가 이곳에 소변을 보면 어디로 가느냐고 질문하자 송 대표는 동쪽은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 서쪽은 금강의 지류인 무심천으로 흘러간다고 답해 한바탕 웃었다.

남암문에서 내려와 상당산성의 남문이자 정문에 해당하는 공남문에 도착했다. 청주문화의집 임병무 관장이 충북의 산성과 상당산성에 관한 역사, 포곡식ㆍ치성ㆍ옹성ㆍ여장ㆍ내탁공법 등 산성에 관한 용어를 자세히 설명해줬다.

공남문을 돌아보고 동쪽 성벽을 따라 산성 안에 있는 한옥마을로 향했다. 어느 때든 보화정과 진동문, 한옥마을이 평화로워 보인다. 방어 목적으로 세운 게 산성이니 옛 사람들도 이렇게 살았으리라. 저수지를 지나 두부를 직접 만드는 식당으로 갔다. 그동안의 노고를 자축하며 막걸리를 나누는 것으로 2008년의 답사를 마무리했다.

복원작업이 이뤄져 하루라도 빨리 상당산성이 옛 모습을 되찾기를, 그리고 새해에는 우리 고장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느라 마지막 마무리가 시내까지 이어졌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