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지각 안 했는데요”

2009.01.17 17:50:00

금요일 아침. 1교시 수업시간 5분 전이었다. 교실 문을 열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조용히 자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출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여학생이 아직 등교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얼굴은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나는데 도무지 이름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담임으로서 그 아이의 이름을 아이들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들어 지각을 자주하는 이름 하나를 떠올리며 말을 했다.

“○○이 아직 학교에 안 왔지? 오늘 또 지각이구나. 혼이 나야겠군.”

내 말이 끝나자마자 교실 뒤에서 누군가가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선생님, 저 지각 안 했는데요.”

그러고 보니, 내가 아이의 이름을 잘못 부른 것이었다. 나의 실수였다. 잠시 뒤, 그 아이는 지각을 하지 않았는데 지각을 한 것으로 오해를 받았다는 것에 화가 난 듯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러자 갑자기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단지 내가 이름을 잘못 불렀을 뿐인데 교실 분위기가 이렇게까지 어수선해 질지 몰랐다. 한편으로 담임을 맡은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아직 아이들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 못한 것에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간신히 그 아이를 달래고 난 뒤, 아이들과 약속을 하였다.

“얘들아, 선생님이 자율학습 1교시까지 너희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하면 피자 열 판을 사주마.”

그제야 아이들은 기분이 풀어졌는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교실 밖으로 나가자 지각을 한 아이가 잘못을 인정하듯 고개를 떨어뜨리고 복도에 서 있었다. 순간 내 시선은 그 아이의 교복에 부착된 명찰이었다.

“맞아, 네 이름이 ○○○ 이었구나. 다만 ○○와 ○○ 초성 자음 하나만 다른 것뿐인데….”

나의 중얼거림에 그 아이는 영문도 모르는 체 내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 아이에게 앞으로 지각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난 뒤 교실로 들어가게 했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교무실로 내려오자마자 교무부에 비치된 전년도 학생명부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우리 반에 소속된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이름을 외웠다.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면서 문득 18년 전 처음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 떠올려졌다. 사실 그 당시에는 담임을 맡은 동료교사가 부러웠고, 심지어 담임을 하려고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부탁까지 하지 않았는가. 운이 좋아 담임을 맡게 되면 먼저 맡게 될 아이들의 이름을 밤새도록 외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 보면서 이름을 불러주면 아이들은 믿기지 않은 듯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곤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담임기피 현상 탓으로 마지못해 담임하는 일부 선생님의 경우, 일 년이 지나도록 아이들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 못해 아이들과 학부모로부터 원성을 듣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 들어, 나 자신도 그런 부류의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곱씹어 보고 싶다. 다시 말해,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식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어쩌면 처음 담임을 했을 때의 그 설렘이 지금은 귀찮음과 무관심으로 탈바꿈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무관심이 결국 한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는가. 사실 아이들 이름 모두를 외우는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지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 것뿐이었다.

자율학습 1교시. 교실 문을 열자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교실 분위기가 왠지 이상해 보였다. 아이들은 교복에 부착된 명찰을 모두 떼고 자리 또한 모두가 바꿔 앉아 있었다.

아마도 그건 나에게 혼란을 주려고 아이들이 짜낸 술책인 듯했다. 오히려 아이들의 그런 모습이 더 귀여워 보였다. 아이들 개개인에게 다가가 얼굴을 보며 이름을 정확하게 맞출 때마다 실망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얼굴에 역력히 나타났다. 마침내 마지막 한 명만 남겨놓은 상태였다.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아이는 아침에 지각한 아이였다. 그리고 난 그 아이의 이름을 정확하게 아는 터였다.

“네 이름은 ○○○이지, 그렇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교실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계속해서 ‘피자’를 합창하였다.

“피자, 피자, 피자…”

그날 저녁, 아이들과 피자를 먹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앞으로 좀 더 많은 관심을 둘 것을 아이들과 약속을 하였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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