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유리한 입시원칙, 공교육 무너진다

2009.02.06 16:44:00

고려대가 수시모집에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최근 보도로 일선 고등학교는 어느 때보다 술렁이고 있다. 대학 측의 어설픈 해명이 오히려 교사와 학생, 학부모에게 의혹만 더 부추기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고려대 수시모집 전형을 목표로 공부해 온 아이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오래도록 고입 비평준화를 유지해 온 이곳 강릉은 고등학교를 결정하는데 대학입시제도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고등학교를 결정하기 전에 내신과 수능 중 어떤 영역이 대학 합격에 더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꼼꼼하게 따져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씩 변화가 생기면서 중학교 내신만 좋으면 무조건 명문고로 진학하려고 했던 쏠림 현상이 깨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명문고 진학만이 일류 대학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학부모의 의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는 고교 내신 성적으로 선발하는 대학의 수시모집 전형 탓이 아닌가 싶다. 많은 아이들이 내신관리만 잘하면, 소위 명문고 학생들만 갈 수 있다는 서울의 일류 대학(일명 SKY대학)에 자신들도 진학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가졌다.

지난 몇 년 이래로 수시모집에서 내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관내 중학교에서 내신 상위권에 해당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진학상담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실질적으로 내신 3%에 해당하는 일부 아이들이 명문고를 포기하고 다른 신흥 고등학교로 입학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2009년 고교 입시결과, 현 중학교 3학년이 대학에 들어가는 2012년 대학입시에서는 내신의 실질 반영률이 줄어든다는 발표 때문인지 내신이 좋은 아이들의 진학이 예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이는 대학의 입시제도가 고등학교 입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중학교 내신이 우수한 한 여학생의 경우, 수시모집 전형으로 K대학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님과 충분히 상담을 하고 난 후 자신의 성적으로 충분히 갈 수 있는 명문고를 포기하고 신흥고등학교인 본교에 입학(2007년)하였다. 그리고 내신 성적을 올리려고 최선을 다한 결과, 전년도(1·2학년) 전 교과 성적이 상위 0.5%에 해당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그런데 K대 수시모집(일반전형: 교과 90%+비교과 10%)을 준비해 온 이 아이에게 큰 고민이 생겼다. 최근 보도된 K대 수시모집에서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사실에 큰 실망을 하는 듯했다. 만에 하나라도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신관리를 잘해 K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본교를 선택한 그 아이의 꿈이 결국 깨지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보도 이후 이 아이는 겨울방학 보충수업에 빠지는 날이 많았고 수업시간에도 집중력이 떨어지는 듯했다. 심지어 친구들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그 충격이 커 보였다. 그리고 관내 명문고로 전학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부모에게 물어보기도 했다고 하였다.

앞으로 고교등급제가 대학 합격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면 결국 대학 입시 수시전형은 자사고, 특목고, 비평준화지역 명문고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될 것이다. 그리고 고교입시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져 일류병에 걸린 우리나라 학부모의 경우,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거기에 따른 사교육비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명문고를 제외한 일반계 고등학교는 초유의 미달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고려대 사건으로 일선 학교 진학 상담 교사들의 걱정도 늘었다. "앞으로 아이들과의 진학 상담에 자신감이 없다"며 무엇보다 우수한 내신에도 고교등급제로 탈락하여 충격을 받게 될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들 한 마디씩 한다.

학교 공부에 내실을 기한 아이들이 대학입시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면 아이들은 공교육을 불신할 것이며 나아가 학원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대학 측은 입시에서 특정 고교에 특혜를 주어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학 측에 유리하게 만든 학생선발기준이 대학입시에 더 큰 혼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선의의 학생들이 피해를 본다는 사실을 대학 관계자는 인지해야 할 것이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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